[시론―권영준] 2차 금융위기와 MB경제
입력 2009-03-04 17:51
미국 최대 은행이자 전세계 소매금융의 황제였던 씨티뱅크가 추가 손실을 견디지 못하고 은행국유화 카드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다. 투자은행(IB)의 탐욕으로 촉발된 금융위기가 실물경제를 강타하여 상업은행(CB)의 부실로 전이되면서, 제2차 금융위기를 증폭시켜 전세계 경제를 파국으로 몰아가고 있는 형국이다.
다우지수는 마지노선이었던 7000선이 무너지면서 끝없는 공포에 휩싸이고 있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와 닐 퍼커슨 하버드대 교수는 경제위기가 장기복합침체를 예고하는 'L자형'으로 진입했다고 전망하면서, 대공황 비슷한 대침체(Great Recession)를 겪고 있다고 했다. 다급한 미국정부는 제2차 금융위기를 최소화하기 위하여 스웨덴식 해법의 첫 단계를 밟기 시작했다.
위기 패턴, 과거와는 확 달라
1990년대 스웨덴에서 금융위기가 터지자 정부가 나서 은행을 국유화하고, 배드뱅크로 악성 부실자산을 모두 흡수한 뒤 강력한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기업가치를 높여 공적자금을 회수하였다. 나중에 한국도 외환위기 이후 같은 방식으로 금융부실을 정리했었다.
그러나 스웨덴의 금융위기나 한국의 외환위기가 국지적이었기에 자국은행의 부실정리만 깨끗이 하고 경제가 회복되면 다시 금융시장이 활력을 찾을 수 있었던 점에 비춰 이번 위기와는 전혀 다른 양상이었다. 이 점에서 오바마 행정부에게 고민의 심각성이 크고, 나아가 세계경제의 깊은 우려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더 심각한 곳은 한국이다. 영국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신흥국 중에서 한국이 남아프리카공화국, 헝가리에 이어 폴란드와 함께 세 번째로 외환위기 가능성이 큰 나라로 지목했다. 수출비중이 너무 높아 해외쇼크에 대한 충격이 크고, 외환보유액 대비 단기채무비율이 100%를 넘어 위기에 취약한 구조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또 동유럽 제조업 국가들의 부도위험률이 높아짐에 따라 한국내 외국인 투자 비중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서유럽국가들이 한국 자본시장에서 자금을 인출할 위험이 높다고 경고하고 있다. 심지어 일부 해외 투자은행들은 올해 한국경제의 성장률을 -5%로까지 전망하고 있다.
이미 외환시장은 이러한 불안들이 반영되어 환율이 1600원대에 근접하는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해외순방 중인 이명박 대통령도 불과 한 달 전과 달리, 그렇게 자신하던 내년 경제회복 가능성을 접고 문제의 심각성을 암시하는 발언을 했다. 경제 대통령으로 당선되었기 때문에 받는 심적 고통도 엄청날 것이다.
스트레스가 극심하면 이로 인해 위기관리에 대한 균형감각을 잃어버릴 위험도 커진다. 수출비중이 너무 높은 경제이기 때문에 지금 같은 시기엔 수출에 올인하는 정책보단 중산층이 빈곤층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특단의 내수진작 정책 등을 택하여야 한다.
균형감각이 위기 돌파 관건
그런데 MB정부의 정책은 수출대기업들에 올인하는 극단적인 정책에 매진하는 듯하다. 기획재정부의 고환율정책이나 한나라당의 출총제폐지와 금산분리 대폭완화 법안 등이 대표적 수출대기업이나 재벌 편향적인 위험한 정책이다.
위기시에는 균형감각을 잃지 않고 추세를 미리 읽어 때로 쉬어가거나 발상의 대전환을 통한 수비 전략이 효율적이다. 작년 초 메릴린치 주가가 낮아 보인다는 어리석은 결정으로 성급하게 투자에 올인했던 한국투자공사(KIC)는 원금의 80%이상을 날려 국민 혈세를 낭비하는 우를 범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에 인수된 메릴린치의 주가가 하락한 것은 물론이고 BOA마저 국유화될 가능성이 커져가는 현실을 너무 안이하게 대응했기 때문이다. 투자나 경제운용 원칙이나 균형감각을 잃게 되면 개인이나 국가나 큰 낭패를 볼 수밖에 없다.
권영준(경희대 교수·경영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