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풍향계―김승욱] 남은 4년을 국론 결집에

입력 2009-02-22 18:30


김수환 추기경 조문 행렬을 보며 그가 정치인이었더라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독재와 민주화 현장의 한가운데에서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유지했던 그와 같이, 국론을 통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정치 지도자가 어디 없을까.

25일로 취임 1주년을 맞는 이명박 대통령이 이러한 균형 잡힌 지도자가 되길 원한다면 남은 4년간의 국정 목표를 과감하게 바꾸어볼 것을 권하고 싶다. 마치 박정희 대통령이 집권 2년 후에 수입 주도형 성장 전략에서 수출 주도적 전략으로 180도 선회하여 수출입국을 이룩한 것처럼.

세계적 경제위기를 예상 못했던 때 세운 '선진일류국가 건설' 등의 목표에 집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지금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들에게 그런 목표는 사치스럽기까지 하다. 당장 고통이 현실로 다가온 이들에게 먼 훗날의 장밋빛 비전이 피부에 와닿겠는가. 그것보다는 시장 모퉁이의 할머니에게 목도리를 감싸주었던 따뜻한 행동이 더 필요할 때다.

그렇다고 과거 좌파 정부처럼 양극화 해소에만 초점을 맞추라는 것이 아니다. 시장이 효율성을 높일 수 있도록 법과 질서를 세우고 규제를 완화하는 대신 정부는 경쟁에서 낙오된 자들을 돌보는 일에 집중해달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이번 전국학력평가 후 서울시교육청이 상위 3%에게는 인센티브를, 하위 3%에겐 불이익을 주겠다고 했는데, 지적하고 싶은 것은 정부가 경쟁을 더 부추길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정부가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기만 하면 경쟁은 저절로 된다. 그 후에 정부는 뒤처진 자들을 끌어올리는 일에 전념하면 된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면서도 정부의 힘을 남용하는 측면이 있다.

개혁도 마찬가지다. 보수를 지향한다면서도 개혁의 속도는 진보 못지않게 급진적이다. 이는 보수적 방법이 아니거니와 의견 수렴을 통한 국민적 통합도 어렵게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불도저'식 추진력을 가지고 많은 '신화'를 이룬 경력이 있어 기대도 컸지만 우려도 많다. 기업이나 행정 조직은 명령에 의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지만 정치는 여야가 있고 다양한 이해관계가 상충된다. 따라서 국론을 하나로 결집할 수 있는 화합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특히 지금처럼 어려운 시기일수록 오바마가 보여준 화합의 리더십이 더욱 절실하게 요청된다.

환란 극복을 위해 이명박 정부는 남은 4년간 국론 결집에 힘써주기 바란다. 그러려면 좀더 투명하게 국정을 운영하고 의견 수렴에 힘을 기울여 기득권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권이라는 선입견을 불식시켜야 한다. 애매모호한 창조적 실용주의라는 구호 대신 뚜렷한 국정 운영 철학을 제시하고, 이를 중심으로 국민이 통합되도록 설득해야 한다.

항상 반대만 하는 집단도 있지만, 아직 상당한 수의 건전한 중립적 집단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기 바란다. 소신을 가지고 솔직하게 국민을 설득하려는 자세를 보여주기 바란다. 그렇게 해서 온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야 이 환란을 헤쳐나갈 수 있다.

인간은 대부분 자신이 원하는 것만 보려는 경향이 있다. 가파른 V자 회복이 온다고 믿고 낙관론만 외칠 일이 아니다.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렵더라도 함께 힘을 합치자는 호소도 중요하다.

로마 1천년 역사에 등장하는 수많은 지도자의 성공과 실패를 상세히 기록한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 이야기'에서 성공 경험이 있는 지도자는 새로운 도전에는 실패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성공 경험을 전혀 새로운 분야에도 그대로 적용하기 때문이다. 기업과 행정가로서의 성공이 반드시 국정 운영의 성공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란 점을 명심하고 초심으로 돌아가 전혀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마음으로 국정 운영 2년째를 맞기 바란다.

김승욱 중앙대 교수 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