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풍향계―김기봉] 끝나지 않은 역사 신드롬

입력 2009-02-15 19:11


과거 없는 사람이나 국가는 없다. 과거는 이 세상에 존재했다는 흔적이다. 흔적은 시간 속에서 지워지다가 언젠가는 사라진다. 이 같은 시간의 변질을 방부처리하기 위해 인간이 만든 것이 역사다. 과거를 역사로 방부처리하기 위해 사용하는 방부제가 매체다.

헤로도토스와 사마천이 역사의 탄생을 위해 사용한 첫 번째 매체가 문자다. 그 후 지금까지 문자로 기록된 과거만이 역사로서의 권위를 가진다. 과거는 사라지고 '삼국사기' '삼국유사' '조선왕조실록'처럼 텍스트로 편찬된 역사만이 기억된다.

최근 미륵사지에서 발굴된 유물과 정조의 어찰첩(御札帖·임금의 편지 모음)이 공개되면서 역사의 권위가 흔들리고 있다. 전자가 '삼국유사'의 기록과 다른 유물이 말하는 과거의 사실이라면, 후자는 '조선왕조실록'과 같은 정사엔 실릴 수 없는 왕의 사적 편지가 증언하는 과거 진실이다. 이 사료들을 통해 역사가 다시 쓰여야 한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 일을 해야 하고 또 할 수 있는 사람은 역사가다. 하지만 현 단계에서 역사가들이 이에 대한 명확한 입장 정리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실증사학이 지배하는 한국사학계의 연구방법론에 대한 일대 성찰과 조선 후기 정치사의 실상, 그리고 근대를 향한 조선의 내재적 발전 가능성을 재검토해야 하는, 단시간 내 해결 불가능한 쟁점들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 사회에 끊임없이 이어지는 역사신드롬이다. 신드롬이라는 것은 증세는 일관되게 나타나지만 어떤 병명을 붙이기에는 인과관계가 불확실한 병적 징후를 뜻한다. 우리사회 역사신드롬 증상은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난다. 하나는 사극이 유발하는 역사적인 사실의 허구화이고, 다른 하나는 최근 한국 근·현대사교과서 파동으로 고조된 역사의 정치화다.

역사논쟁은 전 국민의 역사에 대한 관심을 증대시키는 긍정적인 효과를 낳는다. 하지만 역사의 과잉은 인간 삶의 건강함을 해치는, 니체가 말하는 '역사의 병'을 유발한다. 니체는 들판의 양들이 행복한 이유는 그들은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므로 오직 현재의 삶만을 향유하기 때문이라 했다. 인간은 그들과 달리 "우리는 기억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말하는 존재다. 과거는 사라져도 우리 안에 존재해 현재 우리의 정체성을 형성한다.

사극 '이산'이 TV라는 매체로 재현한 것은 과거 정조가 아니라 '우리 안의 정조'다. 정조의 비밀 어찰은 '우리 안의 정조'를 수정할 것을 요구하는 새로운 사료다. 우리는 정조를 개혁군주의 모범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그의 죽음으로 조선은 근대사회로의 이행을 위한 자생적 발전을 이룩할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함으로써 일제에 의해 병합당했다는 애석함이 그런 기억을 만들어낸 것은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정조라는 나무만 보고 역사라는 숲은 보지 못하는 꼴이다.

정조가 사적인 편지로 공적인 정치를 좌지우지할 때 프랑스에서는 왕을 민족 반역자로 처형하는 근대혁명이 일어났다. 문체반정(文體反正)으로 공론장의 형성을 막았던 그의 정치의식은 "짐이 곧 국가다"라고 말했던 17세기 루이 14세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했다. 어찰로 막후정치를 펼쳤던 그를 마키아벨리스트라고 칭하는 사람이 있지만, 마키아벨리 정치사상의 핵심은 정조처럼 도덕과 정치를 겉과 속의 이중성으로 결합하는 위선에서 탈피하여 냉철한 국가이성으로 국가를 통치하라는 것이다.

우리사회는 현실정치를 위해 과거를 이상화하거나 과거비판을 통해 현실정치를 옹호하는 역사신드롬에서 벗어나야 한다. 오늘날에도 정조를 역사의 거울로 삼아 서신정치로 정치를 사유화하는 권력자가 있다면 역사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정조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어찰은 200년 이상 숨어 있다 우리 앞에 나타나 역사의 진실을 말함을 권력자들은 명심해야 한다.



김기봉(경기대 교수·역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