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속으로 떠나는 순례] 모세 할머니 ‘초겨울의 농가’

입력 2009-02-15 17:47


미국에서 사랑받고 있는 작가 중 한 명인 모세(본명 마리 로버트슨 모세) 할머니는 1860년 그린위치란 시골마을에서 태어났다. 집안이 대대로 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그녀도 어릴 적부터 농사일을 하던 평범한 여인이었다.



틈날 때마다 해오던 뜨개질도 나이가 들면서 관절염으로 포기해야 했다. 그러던 중 소일거리로 67세 때 처음 붓을 잡기 시작했고 그림공부가 전무한 그녀에게 뜻밖의 행운이 찾아왔다. 그것은 다름 아닌 루이스 칼더라는 미술 수집가가 우연히 동네 약국에 걸린 그녀의 그림을 보고 예술적 재능을 발견한 것이 그녀를 일약 유명 화가로 만든 계기가 됐다. 그 후 모세 할머니는 미국 전역은 물론 전 세계를 순회하면서 개인전을 열었다.

대개 아마추어 화가는 창작열의 및 끈기 부족으로 기회가 와도 정작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모세 할머니는 달랐다. 그녀는 30년 동안 무려 3600점의 그림을 제작하는 열정을 보였다. 이것은 어지간한 젊은이도 감당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분량이다.

모세 할머니가 모티브로 삼은 것은 농촌 삶의 장면이었다. 그녀의 초기 스타일은 매우 사실적이다. 미국의 계절감각을 생생하게 표현했을 뿐만 아니라 시골사람들의 생활상, 그러니까 밭을 일구고 가축을 돌보는 농부, 결혼식을 올리는 신혼부부, 예배당 가는 사람들, 마차를 타고 어디론가 가는 사람들, 썰매를 지치는 사람들, 방학을 마치고 개학을 맞아 학교로 돌아가는 학생들을 화면에 깨알같이 그렸다.

그녀의 그림은 흔히 '소박파(Naive art)'로 분류되지만 그 안에 사람을 주인공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풍속화에 가깝다. 풍속의 기록 자체가 중심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의 현장을 말랑말랑한 감성으로 되살려냈다. 미국의 전형적인 목가적 풍경을 옮겨내면서 그들의 순박한 삶을 손에 잡힐 듯 포착했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따로 모델을 세운 것이 아니라 주변 인물이 그림의 주인공이어서 친근감이 더한다.

후에 미국의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그녀에게 미술에 대한 공로를 인정하는 상을 수여했고, 1960년 넬슨 록펠러 뉴욕 주지사는 그녀의 탄생 10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이례적으로 '모세 할머니의 날'을 제정했다.

미국 농촌의 모습을 그녀보다 세세하고 사랑스럽게 묘출한 화가가 또 있을까. 그녀의 그림을 보면 하나님의 돌보심을 나타내듯 예쁜 교회당이 등장하고, 그 주위로 사람들이 조화롭게 살아가는, 참으로 평화로운 느낌을 만끽할 수 있다. 모세 할머니의 그림을 보며 '은총을 입은 자연과 인간'에 대해 생각해보면 어떨까.

서성록<안동대 미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