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프’ 변정현은 지난해 LCK 챌린저스 리그(LCK CL)를 평정하고 그 성과와 실력을 인정받아 올해 OK 저축은행 브리온 1군에 임대 선수로 합류했다. 한 팀의 주전 원거리 딜러로 나서는 LCK 첫 정규 시즌, 적응 과정은 녹록하지 않다. 그러나 세계 최고 리그의 선배들에게 한 번씩 당해가면서 조금씩, 천천히, 분명히 성장하고 있다.
정규 시즌 개막 후 3연패를 기록 중이던 OK 저축은행은 11일 DN 프릭스를 상대로 뒤늦게 시즌 첫 승을 거뒀다. 가뭄에 단비 같은 승점, 경기 후 변정현을 만났다. 그는 “오늘 승리가 이렇게 기쁠 줄은 몰랐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 기쁘다”면서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가 모두 해소되는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서로 시즌 첫 승을 노렸던 경기였습니다. 부담감이 컸을 법도 한데요.
“오늘 경기가 정말 중요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필요 이상으로 의식하면 부담감만 커질 것 같았어요. 게임의 중요성을 생각하기보다는 내가 게임에서 뭘 하는 게 좋을지에 더 집중했어요. 유리한 라인전 구도에서 최대한의 이득을 챙기고, 항상 한타에서 내가 딜할 수 있는지 여부를 팀원들에게 전달하려 했어요. 게임 하면서도 계속 ‘이길 수 있다’고 되뇌었고요.”
-칼리스타·바루스·이즈리얼. 팀이 밴픽에서 빠르게 원거리 딜러를 잡아줬어요.
“1세트에서 칼리스타를 1픽으로 잡아줬는데 그만큼의 활약을 못 했다고 생각했어요. 라인전을 더 잘해야 했는데…2세트에서 바루스를 잡았을 땐 무조건 바텀 주도권을 잡아주려 했습니다. 더 책임감을 갖고서 임했어요. 초반 딜 교환이 잘 돼서 계속 상대보다 선턴을 잡았을 때 우리가 우위를 점했다고 생각했어요.
첫 세트는 유충에 과도하게 집착한 게 패인이었다고 봤어요. 사실 칼리스타를 잡았으면 챔피언의 힘을 살려서 드래곤 스택을 쌓고, 교전을 열어서 스노우볼을 굴려야 했는데 말이죠. 2세트는 드래곤 스택도 착실히 쌓았어요.
3세트에서 이즈리얼을 빠르게 가져왔을 때도 먼저 원거리 딜러를 고른 값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빅토르·카이사, 상대 조합의 밸류가 좋았던 만큼 드래곤 스택을 쌓아 스노우볼을 굴리려고 했지만 거기에만 매몰돼서 조급하게 플레이하진 않으려고 했어요. 호흡을 계속 가다듬으면서 ‘천천히 해도 좋다’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생각했던 것보다 우리 조합의 밸류도 밀리지 않더라고요.”
-CL 최고의 원거리 딜러였습니다. LCK 무대는 확실히 다른가요.
“플레이의 디테일과 움직임 차이가 큰 걸 느껴요. CL에서는 제가 웬만하면 우위를 점해서 구도 정리와 데이터 기반 플레이의 필요성을 못 느꼈던 게 사실이에요. 구도를 바꿔서 해도 이긴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역시 세계 최정상의 리그는 다르더라고요. 여기서는 제가 편한 구도를 알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저만의 데이터가 있어야 해요. 데이터를 충분히 쌓은 채로 LCK에 온 게 아니다 보니 상대만 갖고 있는 데이터에 당해서 아무것도 못하고 진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요즘 유행하는 이즈리얼 대 미포 구도를 예로 든다면, CL에선 이즈를 잡아도 미포를 잡아도 제가 이긴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여기서는 제가 어떤 걸 먹어야 조금이라도 더 우위를 점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돼요. 처음 팀에 왔을 때 상대적으로 경험이 많은 ‘클로저’ 이주현이 그런 얘기를 해줬었어요. ‘우리는 비교적 신인이고 실력도 부족하다. 게임하기 편한 환경을 만드는 게 우선이다’라고. 그 말이 정확하더라고요. 아직은 데이터가 부족하지만 착실하게 쌓아나가고 있는 단계예요.
실수를 하면 치러야 하는 댓가도 훨씬 커요. CL에선 사소한 디테일을 놓치더라도 상대가 캐치하지 못해서 우리가 위기를 넘기는 순간이 있거든요. LCK는 그런 게 없어요. 실수를 한 번 하면 절대 놔주지 않고 상황을 이어나가요. 숨이 막히죠.”
-베테랑 중 베테랑인 ‘데프트’ 김혁규도 예전에 인터뷰에서 비슷한 생각을 밝힌 적 있습니다. “잘하는 원거리 딜러의 기준은 1순위가 밴픽을 잘하는 것, 2순위가 플레이를 잘하는 것”이라고요.
“안 그래도 작년에 같은 KT 롤스터 소속이던 ‘데프트’ 선수한테 물어본 적이 있어요. 진·미포 구도의 메타였는데 저는 진으로 미포를 어떻게 이겨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데프트’ 선수한테 도움을 요청드렸더니 제가 1레벨, 2레벨, 3레벨에 각각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자세하게 알려주셨어요.
그때는 그저 ‘역시 베테랑은 디테일이 엄청나구나’라고만 생각했죠. 디테일과 데이터의 중요성을 깨달은 이제는 ‘그렇게 세세하게 구도를 설계하고 우위를 점할 방법을 고민해야만 그런 자리까지 오를 수 있는 거구나’하는 생각이 드네요. 저도 그 정도 디테일은 쌓아야 경쟁력 있는 선수가 될 수 있겠구나….”
-그래도 오늘 첫 승을 거둬서 OK 저축은행 팬들의 걱정이 많이 해소됐습니다.
“솔직히 저도, 팀도 그동안 경기력이 좋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스스로 부끄럽더라고요. 팬분들께 죄송하기도 했고요. 그래도 계속 더 잘하기 위해 열심히 연습 중이라는 것만은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언젠가는 반드시 더 많은 승리를 선물해드리겠습니다.”
윤민섭 기자 fla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