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이 11일 제주를 찾아 박진경 대령(1920~1948) 국가유공자 지정 논란에 대해 사과했다.
권 장관은 이날 오후 2시50분 비행기를 타고 제주로 이동해 제주4·3평화공원을 찾아 참배한 뒤 4·3희생자유족회 집행부와 면담을 가졌다.
권 장관은 “현행법상 지정 취소는 어렵지만, 4·3의 아픔을 가진 도민의 입장을 이해하고 송구스럽다”는 취지의 말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족들과 면담을 끝난 권 장관은 곧바로 제주도청으로 향해 오영훈 제주도지사를 만났다.
이 자리에서 권 장관은 “제주도민의 아픈 상처를 듣고 정말 송구스럽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국가보훈부 장관으로서 변명이나 말을 더 붙일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이재명 정부는 국민주권 정부이자 국민통합 정부인데, 이번 일로 그 기본 취지에 손상이 올까 우려된다”며 “제주4·3은 국가폭력 피해이고, 희생자와 유족들의 오랜 억울함과 한을 풀어주는 것이 국가의 역할인데 국가보훈부가 부응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이에 대해 오 지사는 “국가유공자 등록 지정에 앞서 진상조사보고서 등을 조금만 들여다봤다면 하는 안타까움이 있다”며 “신속한 제도 보완을 통해 국가유공자 지정이 취소되지 않으면 도민과 유족의 아픈 마음을 보듬을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오는 15일 제주도는 박진경 대령 추도비 옆에 진실을 알리는 내용의 안내판을 설치하기로 했다”며 박 대령을 바라보는 제주도민의 감정과 역사적 진실이 가볍지 않음을 설명했다.
국가보훈부는 지난 11월 박진경 대령을 국가유공자로 지정했다. 보훈부는 유족이 무공훈장 수훈 이력을 근거로 신청했고, 국가유공자법 제4조에 따라 자격을 인정했다고 밝혔다.
박진경 대령은 1948년 5월 제주에 주둔하고 있던 제9연대장으로 부임해 4·3 당시 강경 진압 작전을 지휘하며 민간인 피해를 키우고 사태를 악화시킨 인물로 평가된다.
박 대령은 당시 연대장 취임식에서 “폭동 사건을 진압하기 위해서는 제주도민 30만을 희생시키더라도 무방하다”고 발언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부임 한 달 동안 수천 명을 검거했다.
박 대령은 강경 진압 과정에서 내부 반발이 커지며 부임 한 달 만에 부하에게 암살당했다. 이후 1950년 12월 을지무공훈장이 추서됐고, 전몰군경으로 인정돼 현충원에 안장됐다.
박 대령의 국가유공자 등록 사실이 알려지자 제주4·3희생자유족회, 제주지역 국회의원, 진보정당 등을 중심으로 도민사회에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오영훈 제주도지사 역시 전날 자신의 SNS를 통해 깊은 유감을 표했다.
이에 권 장관은 같은날 국가보훈부 명의의 공식 입장문을 내고 “신중한 검토가 이뤄지지 못한 점에 대해 4·3 희생자와 유가족, 제주도민께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그러나 공식 사과에도 논란이 가라앉지 않자 제주 방문을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국가보훈부는 박 대령의 무공훈장 서훈이 취소되지 않는 이상 현행 국가유공자법상 국가유공자 등록을 취소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제주=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