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치미술가 한원석 작가가 서울에서 열리는 ‘2025 청계천 빛초롱 축제’에서 신작 ‘환월(還月, Re:moon)’을 선보인다. 폐차된 자동차에서 떼어낸 헤드라이트 600개와 고무 실링을 재조합해 만든 거대한 달항아리 형태의 작품으로, 축제 기간 청계천을 밝히는 핵심 조형물 중 하나다.
서울빛초롱축제는 ‘나의 빛, 우리의 꿈, 서울의 마법’을 주제로 오는 12일부터 내년 1월 4일까지 청계천 일대에서 열린다. 한 작가의 ‘환월’은 이번 축제의 상징 조형물로 자리하며 겨울밤 청계천에 새로운 ‘도시의 달’을 띄울 예정이다.
‘환월’은 소멸한 전조등의 빛을 다시 모아 완전한 형태의 달항아리로 되살리는 개념에서 출발한다. 청계천 복원을 통해 시민 공간은 회복됐지만, 청계고가를 달리던 자동차의 빛은 어둠 속에 묻혔다는 문제의식이 배경이다. 한 작가는 해체된 폐부품을 결합해 환생의 서사를 구성하며 “부서진 빛이 다시 회복되는 순간”을 조형적으로 구현했다. 이는 기후 위기 시대 예술이 지닐 수 있는 지속가능성과 환경 메시지로 확장된다.
작품의 조형적 영감은 조선 영·정조 시기 금사리 가마에서 제작된 대형 백자대호(달항아리)에 기반한다. 특히 더프리마뮤지엄 소장 달항아리는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반출됐다가 2007년 경매를 통해 약 100년 만에 환수된 문화재로, 소멸과 귀환의 서사가 ‘환월’의 의미 구조와 맞물린다. 한 작가는 이 시간의 층위를 현대적 설치미술로 재해석하며 회복의 은유를 시각화했다.
미술평론가 고충환은 한 작가가 폐 스피커·폐 헤드라이트 등 버려진 감각의 잔해를 통해 공감각적 조형 언어를 구축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유성림 큐레이터는 “‘환월’은 버려진 사물에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는 모뉴먼트로서 시민에게 환경 감수성을 일깨우는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서진석 부산시립미술관장 역시 “기능을 잃은 폐기물에 새로운 삶을 부여하는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했다.
영국과 한국을 오가며 활동하는 한원석 작가는 장소특정 설치미학을 구축해 온 작가이자 건축가다. 폐스피커 3650개로 제작한 ‘형연(泂然)’(2008 부산비엔날레), 폐헤드라이트 1374개로 완성한 ‘환생(還生)’(런던시청 전시 초청) 등이 대표작이다. 최근에는 2025 경주 APEC 기념 조형물 ‘환영(環影)’을 선보이며 공공 예술 영역으로 작업을 확장하고 있다.
윤일선 기자 news828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