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공동체·연탄은행 대표 허기복 목사가 11일 오전 서울 용산구 서울연탄은행 4층 예배당에서 “우리, 옆 사람을 보고 머리 위로 하트를 한번 그려봅시다. 우리가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라고 외치자, 객석에 앉아있던 어르신들이 쑥스러운 듯 웃음을 터뜨렸다.
투박하고 주름진 손들이 일제히 머리 위로 올라가 엉성하지만 따뜻한 하트 모양을 만들어냈다. 백사마을과 동자동 쪽방촌 어르신, 보훈 가족들은 서로의 눈을 맞추며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라고 인사를 건넸다. 이어 봉사자들이 율동과 함께 ‘야곱의 축복’을 부르자, 참석자들은 박수를 치며 찬송가를 따라 불렀다.
밥상공동체·연탄은행(대표 허기복 목사)이 설립한 서울연탄교회는 이날 ‘추수감사와 미리 성탄절 목요축제’를 열고 소외된 이웃들과 성탄의 기쁨을 나눴다. 이날 모인 이들에게는 각별한 사연이 있다. 참석자 다수는 재개발로 뿔뿔이 흩어진 서울 노원구 ‘백사마을’의 옛 주민들이다. 연탄은행은 20년 넘게 동고동락했던 이들을 잊지 않고 초청했고, 지난해 연탄은행이 용산으로 이전하며 새 이웃이 된 동자동 쪽방촌 주민들이 이들을 맞이하며 ‘가족’의 정을 나눴다.
이날 행사는 여느 때보다 후원의 손길이 절실한 시점에 열려 의미를 더했다. 허 목사는 이날 국민일보와 만나 “사회적으로 어수선한 분위기와 경기 침체 여파로 올해 연탄 후원이 목표의 5분의 1 수준에 그쳤다”며 “통상 1월 초가 지나면 사람들의 관심이 급격히 줄어드는 ‘후원 절벽’이 오는데, 내년 4월까지 어르신들의 방을 데우기 위해선 지금 사회적 관심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나눔은 이어졌다. 이날 자리에는 지난 7월 퇴임한 강정애 전 국가보훈부 장관이 참석해 연탄 후원금과 점심 식사비 전액을 쾌척했다. 강 전 장관은 참석자들을 위해 가족과 함께 떡을 준비해와 대접하며 조용히 힘을 보탰다.
강 전 장관은 “퇴임 후 한 해를 마무리하며 봉사할 곳을 찾다가 평소 인연이 깊은 연탄은행을 찾았다”며 “보훈은 정부의 정책을 넘어,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이웃의 영웅들을 기억하고 행동으로 나설 때 완성된다”고 강조했다.
허 목사는 이날 설교에서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고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구원의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하자”며 “창고가 비어있어도 서로를 위해 하트를 그리고 온기를 나눌 수 있는 우리가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의 이유는 충분하다”고 말했다.
어르신들은 예배 후 강 전 장관과 연탄은행 관계자들이 준비한 소고기국밥과 과일 그리고 떡을 함께 나눴다. 귀갓길에 오른 어르신들에게 라면 한 박스와 쌀, 치약, 지팡이, 달력 등 당장 생활에 필요한 생필품 꾸러미를 강 전 장관이 준비한 떡과 함께 일일이 손에 쥐여주며 배웅했다.
허 목사는 “내년에는 후원받은 대형 버스로 어르신들을 모시고 서울 나들이도 갈 계획”이라며 “재개발로 몸은 흩어졌어도 우리는 영원한 식구다. 끝까지 어르신들을 잘 섬기며, 가난해도 당당하게 나누는 공동체가 되겠다”고 약속했다.
김용현 기자 fa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