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지스타에서는 쟁쟁한 글로벌 게임 개발자들이 연사로 나섰다. 부산 벡스코 컨벤션홀에서 열린 G-CON 2025에는 드래곤퀘스트 시리즈의 호리이 유지, ‘니어: 오토마타’의 요코 타로, ‘파이널판타지 XIV’의 요시다 나오키, ‘디스코 엘리시움’의 로버트 쿠르비츠 등 이름만 들어도 작품이 떠오르는 디렉터들이 직접 무대에 올랐다.
드래곤퀘스트를 만든 호리이는 여러 인터뷰에서 밝혀 온 ‘따뜻함과 접근성’을 드래곤퀘스트다움을 이루는 핵심 철학으로 짚었다. 더불어 플레이어가 스스로 주인공이라고 느끼게 만드는 연출·시스템, 그리고 ‘게임은 커뮤니케이션 도구’라는 자신의 관점을 설명했다. 요코 타로는 ‘니어’ 시리즈에서 인간과 세계에 대한 독특한 시각을 어떻게 담아 왔는지, 그리고 최근 몇 년간 중도 취소된 여러 프로젝트의 비화를 전하며 자신만의 서사 철학을 풀어놓았다. 또한 요시다 나오키는 초기 버전의 실패 이후 시스템을 전면 개편해 ‘파이널판타지 XIV: 신생 에오르제아(A Realm Reborn)’로 재출시했던 경험, 그 과정에서 회복한 신뢰, 앞으로 ‘두 번째 신생’을 준비하겠다는 각오를 공유했다.
이들은 특정 회사 소속 개발자를 넘어섰다. 이름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로 통한다. ‘작가주의’가 게임을 고르는 중요한 가치가 되었다. 어떤 게이머는 “호리이가 만들면 기본은 간다”고 말하고, 또 다른 플레이어는 “요코 타로 게임이면 스토리부터 확인해 봐야 한다”고 말한다. 즉, IP보다 PD의 이름이 앞서는 시대, 영화처럼 감독의 철학이 투영된 작품을 소비하는 시대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금강선, 김창한, 김형태처럼 제작자의 이름이 작품의 색채와 방향성을 규정하는 사례들을 찾을 수 있다. 금강선 디렉터는 로스트아크만의 전투·운영 철학으로 유저 사이에서 이름 자체가 신뢰의 상징이 되었다. 배틀그라운드를 이끈 김창한 총괄은 배틀로얄 장르를 글로벌 시장에서 더욱 유행시켰다. 그런가 하면 시프트업의 김형태 대표는 독자적 아트디렉션을 통해 ‘김형태 스타일’이라는 브랜드를 구축했다.
그래서일까, 이번 G-CON에는 다수의 국내 디렉터들도 마이크를 잡았다. 글로벌 흥행작 소울라이크 ‘P의 거짓’과 DLC ‘P의 거짓: 서곡(Lies of P: Overture)’을 이끈 네오위즈 라운드8 스튜디오 최지원 디렉터를 비롯해 이상균·진승호 디렉터, 권병수 내러티브 디렉터가 무대에 올랐다. 네오위즈와 G-STAR 조직위는 이들을 “국산 콘솔 패키지 게임으로 글로벌 시장을 연 K-콘솔의 대표 사례”로 소개했다.
이러한 트렌드는 인디 스튜디오도 예외가 아니다. SouthPAW Games의 ‘Skul: The Hero Slayer’는 대학 동기 9명이 만든 팀에서 출발했지만, 출시 첫해 스팀 100만 장, 이후 전 플랫폼 합산 200만 장을 넘기며 한국 인디 게임의 새로운 기록을 세웠다. Team Horay의 ‘Dungreed’ 역시 스팀에서 ‘매우 긍정적’ 평가를 꾸준히 유지하며 해외 스트리머와 유저들에게까지 알려졌다. 한국에서도 장르·규모를 넘어 디렉터와 스튜디오의 색깔이 강한 작품들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다만 이러한 사례들이 늘고 있음에도, 국내에서는 여전히 “게임 = 회사”라는 인식이 강하다. 해외에서는 드래곤퀘스트, 니어, 파판14, 디스코 엘리시움을 이야기할 때 자연스럽게 호리이·요코 타로·요시다·쿠르비츠 같은 이름이 따라붙지만, 우리나라는 앞서 언급한 일부 사례를 제외하고선 회사명과 IP명만 남고 디렉터 이름이 묻히는 경우가 훨씬 많다. 미디어·유통·투자 구조가 ‘개발사, 또는 스튜디오’보다 ‘퍼블리셔와 플랫폼’을 더 드러내 왔기 때문이다. 이래서는 스타 PD가 나와도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는 정보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앞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이름만 보고도 게임의 방향성을 짐작할 수 있는 디렉터’들이 더 많이 등장하길 바란다.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그들의 이름을 먼저 ‘불어주어야’한다. 게이머와 미디어가 게임사보다 개발자에게 주목할 때 비로소 그러한 생태계가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 이용자는 회사보다 크리에이터를 따라가고, 젊은 개발자들은 ‘어떤 회사에 들어갈까’란 고민과 함께 ‘어떤 디렉터와 어떤 팀에서 어떤 게임을 만들 수 있을까’를 같이 고민할 수 있다. 또한 상업성 이외에 작품성 등 여러 가치가 존중받는 게임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정책적 접근도 필요하다. 회사 중심 지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PD·디렉터·리드 개발자 같은 창작자 단위의 브랜드를 키우는 방향을 고민해야 한다. 강연·멘토링·콘퍼런스를 확대해 스타 개발자와 청년 개발자를 직접 연결하고, 지스타 같은 행사에서 이들에게 더 많은 마이크와 기회를 주는 것도 좋을 것이다.
앞으로 ‘호리이·요코 타로·요시다’ 옆에 최지원·김형태·김창한·금강선, 그리고 새로운 인디 디렉터들이 함께 거론되는 날이 오길 바란다. 이런 사례가 많아질수록 한국 게임 산업은 회사 중심 구조를 넘어 개발자 중심의 생태계도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이도경 청년재단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