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생애주기를 ‘하나의 흐름’으로…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의 ‘조용한 혁신’

입력 2025-12-11 13:13 수정 2025-12-11 21:20
박정숙 서울시여성가족재단 대표이사가 11일 서울여성프라자에서 진행된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재단의 핵심 정책 방향을 설명하고 있다. 서울시 여성가족재단 제공

“정책은 결국 시민의 마음과 일상에 닿아야 합니다. 여성이 살아갈 힘을 얻고 아이가 자라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 결국 서울의 미래를 바꾸는 힘입니다.”

박정숙(55) 서울시여성가족재단 대표 이사에게서 전해지는 여성 정책의 키워드는 ‘마음’ ‘일상’ ‘환경’ ‘미래’ 등이었다. 조용한 어조였지만 확고한 방향성이 와닿았다.

박 대표는 11일 서울 동작구 서울여성프라자에서 국민일보와 만나 “여성과 아이의 일상에서 느껴지는 변화가 곧 도시의 힘”이라며 재단의 핵심 과제를 설명했다. 현재 재단이 집중하는 일은 ▲저출생 대응 ▲미래형 돌봄 체계 구축 ▲지역 기반 양성평등 협력 강화 등 3가지 축이다. 박 대표는 “단순히 출산을 장려하는 정책이 아니라 믿고 아이를 낳고 키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했다.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은 서울시의 성평등 정책과 가족정책을 연구·개발하고 관련 사업을 수행하는 공공재단이다. 2002년 설립 이래 여성의 경제·사회 참여 확대, 일·생활 균형 지원, 가족 돌봄 정책 강화, 성폭력·가정폭력 예방 등을 목표로 다양한 정책 연구와 프로그램을 추진해 왔다.

지난해 9월 박 대표가 취임한 이후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재단은 여성과 가족에게 조금 더 따뜻한 서울을 만드는데 힘을 쏟고 있다. 여성으로 하여금 일상의 부담을 덜어내면서 돌봄과 안전, 일과 경력의 흐름을 이어주는 노력이다.

박정숙 서울여성가족재단 대표가 중랑서울장미축제에 마련된 아동 돌봄 체험부스에서 아이들과 소꿉놀이 활동을 하며 눈높이를 맞추고 있다. 재단의 미래 돌봄 정책 방향을 시민들에게 소개하는 자리였다.

임신·출산·양육 정보를 한곳에 모은 ‘서울아이룸’, 아이의 미래역량을 중심에 둔 ‘서울미래아이’ 프로젝트, 자치구와 연계한 권역별 협력 모델 등이 시민의 일상 속에서 서서히 자리 잡고 있다. 흩어져 있던 정책들이 상호 연결되면서 실질적인 시너지 효과가 체감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박 대표는 취임 이후 가장 의미 있게 여기는 성과로 “여성의 생애주기를 하나의 흐름으로 잇는 정책 체계를 제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미혼기, 임신·출산기, 돌봄기, 경력 단절 대응은 각각 따로 관리되어 왔다.

이에 재단은 난자동결 비용 지원, 공공예식 서비스 확대, 일·생활 균형 기업문화 컨설팅, 임신·출산기 정서 지원 프로그램 ‘마음잡고’, 미래 역량 콘텐츠 개발, 양육친화형 인턴십 등으로 각 단계의 공백을 메우는데 일조하고 있다. “여성의 삶 어느 지점에서도 멈추지 않도록 돕는 것이 공공의 역할”이라는 게 박 대표가 강조하는 대목이다.

박정숙 대표가 저출생 대응과 미래 돌봄 체계 구축 등 재단의 주요 과제를 설명하며 변화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재단 조직 내부의 변화도 눈길을 끈다. 연구와 사업을 분리해 운영하던 구조에서 탈피해 연구자가 사업 현장과 직접 맞닿는 협업 체계를 구축했다. 이는 정책이 현장에서의 문제의식과 바로 연결되면서 실행 결과가 다시 연구로 환류되는 선순환 효과를 낳고 있다.

직원들이 정책을 ‘만드는 사람’으로 동참하는 문화가 정착하면서 내부 만족도 또한 개선됐다. 공공기관의 조직문화가 한층 수평적이고 부드럽게 바뀌는 것이 정책의 질을 제고하는 흐름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서울의 인구구조 변화는 재단의 역할과 존재 이유를 더욱 확고하게 드러내고 있다. 초저출생, 고령 여성 증가, 1인 가구 확대는 도시의 돌봄과 안전, 일자리 체계를 다시 설계해야 하는 시대적 요구다.

박 대표는 “(이같은 시대적 변화 속에서) 재단은 디지털 기반 사회적 돌봄 모델, 스토킹·디지털성범죄 피해자 지원, 여성의 경력 지속을 위한 디지털 역량 강화, 공공돌봄 인프라 확충 등을 통해 대응하고 있다”면서 “이는 복지 차원을 넘어 도시의 지속 가능성을 만드는 공공의 기반으로 기능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서울여성가족재단이 운영하는 ‘잇츠 IT’s 스터디’ 3기 킥오프 행사 현장. 박정숙(가운데) 대표가 디지털 역량 강화를 위한 프로그램 참가자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박 대표는 “정책은 결국 시민의 마음과 일상에 닿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단이 추진하는 사업이 직원들에게는 자부심이 되고, 시민에게는 안전과 신뢰를 갖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년부터 재단은 AI(인공지능) 시대를 대비한 ‘스마트우먼 프로젝트’를 본격 추진한다. 돌봄 수요 예측, 안전 취약지 분석, 여성 경력관리 등 다양한 분야에 AI 기술을 접목해 새로운 공공서비스 모델을 실험할 계획이다. 조용하지만 꾸준한 변화가 도시 전체의 흐름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 이 프로젝트의 바탕에 있다.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이 운영한 체험형 일자리 홍보 부스에서 박정숙(가운데) 대표와 재단 관계자들이 방문한 시민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재단은 축제 현장에서 시민 참여형 프로그램으로 여성 일자리 정책을 소개했다.

재단의 변화는 거창한 구호보다는 여성과 아이의 하루를 지켜나가는 세심한 정책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변화는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이어가는 중이다.

이은철 기자 dldms878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