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0일(현지시간) 베네수엘라의 대형 유조선을 나포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행정부가 마약 운반 의심 선박이 아닌 유조선을 이례적으로 나포한 것은 베네수엘라의 석유 사업을 압박해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축출하려는 시도라는 해석이 나왔다. 특히 베네수엘라 야권 지도자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가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는 당일 마두로 정권을 겨냥해 유조선까지 나포하면서 야권에 힘을 싣는 조치라는 평가가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열린 행사 도중 “아마 알겠지만, 우리는 방금 베네수엘라 해안에서 유조선을 나포했다”며 “대형 유조선이다. 사실 지금까지 나한 것 중 가장 큰 규모”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매우 타당한 이유로 나포포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유조선 소유주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유조선에 있는 원유에 대해서는 “우리가 가져올 것 같다”고했다.
팸 본디 법무장관은 미국 해안경비대와 연방수사국(FBI) 등이 국방부 지원을 받아 해당 유조선에 대한 압수영장을 집행했다고 밝혔다. 본디 장관이 소셜미디어에 게시한 영상을 보면 제복을 입은 남성들이 헬기에서 로프를 타고 내려와 총을 겨누며 조타실로 진입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는 해당 유조선이 “베네수엘라와 이란에서 제재 대상이 된 석유를 운송하는 데 사용됐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해안경비대는 이날 오전 베네수엘라 인근 국제 해역에서 유조선을 나포했다. 작전 과정에서 사상자는 없었고, 선원들의 저항도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유조선은 ‘스키퍼(Skipper)’라는 이름의 선박으로 베네수엘라 국영 석유회사인 ‘페트로레오스 데 베네수엘라(PDVSA)’의 원유를 싣고 운반 중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선박은 이란산 원유 밀수 사건에도 연루된 전력이 있고, 등록되지 않은 라틴아메리카 국가의 국기를 달고 항해 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NYT는 한 당국자들 인용해 “연방법원이 해당 선박에 대해 압수영장을 발부한 것은 마두로 정권과의 연계가 아니라 이란산 원유 밀수 전력 때문”이라고 전했다.
미국의 유조선 나포는 베네수엘라의 경제에 직격탄이 될 수 있다. 베네수엘라는 수출 수익의 대부분을 원유에 의존하고 있어서다. 베네수엘라는 석유 수출 수익의 상당 부분을 식량과 의약품 같은 생필품 수입에 쓰고 있다. 현재 베네수엘라 전체 석유 수출량의 약 80%는 중국이 구매하고 있다. 일부 소량의 원유만 쿠바와 미국으로 수입된다.
트럼프는 지난 9월 이후 마두로 정권에 대한 압박을 높여왔다. 지금까지 카리브해에서 마약 의심 선박에 대한 22차례 공습을 단행해 80여명을 사살했다. 트럼프는 해상 뿐 아니라 베네수엘라에서 지상 작전도 곧 있을 것임을 시사해왔다. 전날 공개된 폴리티코 인터뷰에서도 마두로에 대한 질문을 받자 “그의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번 나포 작전은 공교롭게도 야권 지도자 마차도가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는 당일이 진행됐다. 마차도는 마두로 정권의 위협 탓에 이날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했고 딸이 대리 수상했다. 마차도는 배를 타고 베네수엘라를 빠져나와 카리브해 섬나라 퀴라소에 도착했지만, 악천후로 시상식에 제때 도착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마차도는 그동안 트럼프에 대한 감사의 뜻을 여러 차례 나타낸 바 있다. 마차도는 노벨상 수상 발표 직후 “이 상을 고통받는 베네수엘라 국민과 우리의 대의에 단호한 지지를 보내준 트럼프 대통령께 바친다”고 말한 바 있다.
워싱턴=임성수 특파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