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의 정신과 인권의 가치를 담은 제주평화인권헌장이 마침내 선포됐다.
제주도는 10일 오전 제주4·3평화공원에서 열린 ‘세계인권선언 77주년 인권의 날’ 기념식에서 제주평화인권헌장 선포식을 진행했다.
제주평화인권헌장은 제주가 걸어온 항쟁과 저항의 역사, 4·3이 지닌 민주주의·평화·인권의 가치를 오늘의 제주 공동체에서 실현하기 위해 제정됐다. 헌장은 총 10장 40조로 구성됐다.
전문에는 ‘제주는 4·3의 민주주의의와 평화, 인권의 가치가 도민의 삶에서 실현되는 평화와 인권의 섬을 만들고자 한다’는 제정 취지가 담겼다.
제1장은 도민 모두가 인권의 원칙과 가치를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가 있음을 규정했다.
특히 2조는 성별, 종교, 장애, 나이, 사회적 신분, 출신 지역·국가·민족, 용모 등 신체 조건과 혼인 여부, 임신·출산, 가족 형태, 인종, 사상·정치적 의견, 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 성적 지향, 학력, 병력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명시했다.
제2장은 4·3을 중점적으로 다뤘다. 4·3의 진실을 알권리, 4·3 피해를 회복할 권리,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기억할 권리, 4·3 왜곡과 폄훼에 대응할 권리, 평화롭게 살아갈 권리 등을 규정했다.
이 밖에도 소통과 참여, 건강과 안전, 문화와 예술, 자연과 사람, 교육 등 도민의 삶과 밀접한 보편적 인권 기준과 이행 원칙이 담겼다.
특히 자연과 인간이 공존해 온 제주 공동체의 정신을 바탕으로 기후위기와 무분별한 개발에 대응해 지속가능한 삶을 확산하려는 제주만의 가치도 포함됐다.
헌장은 도민과 행정의 역할도 규정했다. 도민은 권리 주체로서 헌장의 실천에 참여하고 타인의 권리를 존중해야 하며, 제주도는 헌장이 행정 전반에서 실현되도록 정책과 제도를 마련하고 이행 상황을 정기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헌장 교육·홍보 확대, 인권침해 및 차별에 대한 구제 절차 마련, 도민 참여 기반의 개정 절차 등도 포함됐다.
평화헌장은 2023년 8월 전문가와 도민 35명으로 구성된 제정위원회 출범을 시작으로 본격적 추진됐다. 이후 공모를 통해 구성된 100명의 도민참여단이 토론을 거쳐 기본안을 마련했다.
그러나 헌장이 모든 종류의 차별을 금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이유로, 일부 종교·보수 단체가 동성애를 옹호하는 것 아니냐며 반대해 왔다.
이들은 “헌장 일부 조항이 가정과 교육 현장, 청소년 보호 등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도민들이 헌장 내용을 충분히 알지 못한 상태에서 추진돼 사회적 갈등이 확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제주도 인권위원회가 지난 9월 최종 수정안을 의결하면서 2년에 걸친 논의 끝에 헌장 제정이 결실을 맺었다.
오영훈 제주도지사는 선포식에서 “제주평화인권헌장은 어떠한 폭력과 차별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도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의지이자 우리 모두의 약속”이라며 “오늘의 선포가 제주를 더 자유롭고 안전한 평화 공동체로 이끄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선포식장에서는 반대 단체가 피켓을 들고 격렬하게 항의했다. 이 과정에서 50대 여성과 60대 여성이 어깨와 가슴 통증을 호소해 119구급대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졌다.
민주노총 제주본부, 제주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 등은 선포식을 전후해 성명을 내고 “헌장은 제주의 아픔과 슬픔을 평화로 결론짓자는 약속”이라며 “혐오와 차별이 심각해진 지금, 공존과 상생을 염원하는 도민 사회의 목소리를 담은 헌장은 그 자체로 뜻깊다”고 환영을 표했다.
제주=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