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엘리자베스 테일러’ 김지미, 미국서 별세…향년 85세

입력 2025-12-10 11:30 수정 2025-12-10 11:36
2019년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식에서 팬들에게 인사하는 배우 김지미. 연합뉴스

‘한국의 엘리자베스 테일러’로 불리며 1960~80년대를 풍미한 원로 영화배우 김지미(본명 김명자)씨가 별세했다. 향년 85세.

10일 한국영화인총연합회에 따르면 고인은 이날 미국에서 세상을 떠났다. 최근 대상포진 바이러스에 감염된 뒤 건강이 악화한 것으로 전해졌다. 협회는 영화인장을 준비 중이다.

1940년 충남 대덕군에서 태어난 고인은 김기영 감독의 ‘황혼열차’(1957)로 영화계에 데뷔했다. 1992년작인 ‘명자 아끼꼬 쏘냐’(감독 이장호)까지 무려 700여편에 출연했다. 2010년 ‘영화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될 당시 ‘화려한 여배우’라는 타이틀로 소개됐다.

고인은 덕성여고 재학 시절 우연히 김기영 감독에게 ‘길거리 캐스팅’돼 배우의 길로 들어섰다. 데뷔 이듬해 멜로 드라마 ‘별아 내 가슴에’(1958·홍성기)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이후 ‘비 오는 날의 오후 3시’(1959·박종호) ‘장희빈’(1961·정창화) 등에 출연하며 한국 영화계 르네상스 시기를 이끌었다. 특유의 세련되고 도시적인 이미지로 사랑받았는데, 특히 살인 사건 중심에 선 묘령의 여인을 연기한 ‘불나비’(1965·조해원)는 그의 ‘팜므파탈’ 매력을 보여주는 대표작으로 거론된다.

‘2014 올해의 여성영화인상’에서 공로상을 수상한 배우 김지미. 뉴시스

김수용·임권택·김기영 등 거장들과의 작업에서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토지’(1974·김수용)에서 대지주 가문을 이끌어가는 안주인 역을 맡아 파나마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과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영화 ‘만추’의 리메이크작 ‘육체의 약속’(1975·김기영)에서 사랑에 빠진 죄수 역할로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각각 받았다. 이산가족 아들을 찾아 나선 중년 여성을 연기한 ‘길소뜸’(1985·임권택)에서 보여준 연기가 백미로 꼽힌다. 후시 녹음이 아닌 자신의 목소리로 완숙한 연기를 보여주며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제작자나 행정가로도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1985년 제작사 ‘지미필름’을 설립한 뒤 ‘티켓’(1986·임권택)을 비롯해 7편의 영화를 제작했다. 1995년 한국영화인협회 이사장, 1998년 스크린쿼터 사수 범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 1999년 영화진흥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다. 작품 활동을 함께한 홍성기 감독, 당대 인기 배우 최무룡, 가수 나훈아 등과 결혼 및 이혼을 거쳤다.

고인은 2019년 부산국제영화제 오픈토크 참석 당시 “배우로서, 개인으로서 인생의 종착역에 가까워지는 시간”이라며 “그동안 사랑을 주신 여러분 가슴 속에 영원히 저를 간직해주시면 고맙겠다”고 말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