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인 ‘라이프 오브 파이’(~내년 3월 2일까지)는 올겨울 최고 화제작 중 하나다. 캐나다 작가 얀 마텔의 동명 소설을 무대화한 이 작품은 공연예술이 보여줄 수 있는 창의력과 상상력으로 관객을 매료시킨다.
‘라이프 오브 파이’는 난파된 화물선에서 홀로 살아남은 소년 파이가 벵골 호랑이와 함께 태평양을 표류하는 227일간의 여정을 담았다. 이안 감독이 2012년 선보인 동명 영화가 CG기술을 토대로 한 장대한 영상미를 보여준다면 이번 공연은 프로젝션 영상과 함께 퍼펫의 활용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영상을 통해 병실이 순식간에 바다로 바뀌고 침대가 구명보트의 일부가 되는가 하면, 퍼펫티어들이 조종하는 동물들은 살아 움직이는 듯한 생동감을 발산한다. 이 작품이 권위 있는 미국 토니상과 영국 올리비에상 시상식에서 다수의 상을 받은 게 이해된다.
그런데, 토니상과 올리비에상 연극 부문에서 상을 받았고 실제로 영국과 미국의 티켓예매사이트에서 연극으로 분류됐던 ‘라이프 오브 파이’는 현재 국내에서 뮤지컬로 판매되고 있다. 노래 한 곡도 나오지 않으며, 음악 사용도 매우 적은 데도 말이다. ‘라이프 오브 파이’의 국내 제작사 에스앤코의 신동원 대표는 연극도 뮤지컬도 아닌 ‘라이브 온 스테이지’라는 장르로 새롭게 규정했다. 다양한 무대예술과 라이브 퍼포먼스의 요소가 결합돼 있어서라는 것이다. 하지만 ‘라이브 온 스테이지’는 원래 라이브로 열리는 공연을 가리키는 말이다. 연극 ‘라이프 오브 파이’를 티켓예매사이트에서 뮤지컬로 판매하는 것에 대한 논리를 제시한 것이지만 설득력이 부족하다.
‘라이프 오브 파이’만이 아니라 현재 인터파크, 티켓링크 등 국내 티켓예매사이트에서 뮤지컬로 분류된 공연 중에는 의아한 작품들이 꽤 있다. 태양의 서커스 ‘쿠자’, 넌버벌 퍼포먼스 ‘난타’ ‘점프’, 이은결의 ‘트랙’ 등 마술 공연의 경우 별도 카테고리가 없어서 뮤지컬에 넣었다 치더라도, ‘슬립 노 모어’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해외에서 연극으로 분류됐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뮤지컬에 포함돼 있다.
또한, 국립창극단의 공연들은 과거엔 모두 전통으로 분류됐다가 창극이 인기를 얻기 시작하면서 바뀌었다. 2013년부터 창극은 연극으로, 완창판소리는 전통으로 나뉘어 분류된 것이다. 이후 2021년 하반기부터 창극과 그해 처음 시작된 ‘절창’은 뮤지컬로 분류됐다. 이 때문에 국립창극단 ‘배비장전’의 경우 2012년 초연과 이듬해엔 전통, 2014년과 2016년엔 연극, 2021년엔 뮤지컬로 분류돼 있다. 같은 작품이 세 장르로 올라간 것이다.
작품의 실제 장르와 다르게 국내 티켓예매 사이트에 등록된 것은 전적으로 제작사(극장)의 결정이다. 여기에는 뮤지컬이 다른 장르에 비해 압도적으로 인기 있는 데서 기인한다. 한국공연예술통합전산망(KOPIS)에 따르면 지난해 뮤지컬 분야 매출은 4551억원을 기록, 연극·클래식·오페라·무용·국악 등을 포함한 전체 공연 매출 6678억원의 70%에 달했다. 즉 팬층이 두터운 뮤지컬 분야에 등록되는 것이 그만큼 많이 노출돼 마케팅에 도움이 된다.
여기에 뮤지컬에 맞춰 티켓 가격을 높게 책정해도 관객의 저항감이 적다. 연극은 올해 기준으로 연예인이 많이 나온 대극장 연극 ‘셰익스피어 인 러브’가 12만원으로 최고가를 찍었다. 다만 이런 작품은 손꼽을 정도로 적고, 전반적으로 제작사의 연극이 최고가 6~8만원대, 극단의 연극이 3~4만원을 형성하고 있다. 이에 비해 뮤지컬은 대극장 기준으로 라이선스 공연이 최고가 16~18만원, 내한 공연이 최고가 19만원을 기록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티켓예매 사이트에서 뮤지컬에 분류된 연극들의 티켓 가격을 보면 최고가 기준으로 ‘라이프 오브 파이’는 16만원,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19만원이다. 그리고 이머시브 공연인 ‘슬립 노 모어’는 티켓 가격이 19만원부터 시작해 특별 경험을 제공하는 티켓은 23만원과 36만원에 판매된다. 세 작품이 해외에서처럼 연극으로 분류됐다면 다른 연극과의 가격 격차가 두드러졌을 것이다.
국내 티켓예매사이트에 공연 장르가 바뀌어 등록되는 현상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이것은 공연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는 것으로, 관객과의 신뢰에 해당하는 문제다. 또한, 뮤지컬에 지나치게 집중되다 보니 연극이나 전통에서도 완성도 높고 재밌는 작품이 나온다는 것을 관객이 모른 채 계속 마이너 장르로만 여기게 될 우려가 크다.
최근 하나의 장르로 구분하기 어려운 융복합 공연도 많이 나오는 데다 뮤지컬 관련 통계에 연극, 서커스, 창극 등이 섞여 데이터의 왜곡이 일어나는 만큼 티켓예매사이트의 장르 분류를 다시 해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또한, 랭킹 역시 장르별 대신 대극장, 중극장 등 규모별로 하면 뮤지컬 쏠림 현상을 막을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다양한 공연 단체와 관계자들 그리고 티켓예매사이트들의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