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가뒷담] 軍위문 성금 안 내는 공무원 손들어라… 기재부 ‘강제 모금’ 논란에 급선회

입력 2025-12-10 05:00
지난 6월 25일 서울 용산구 서울역 대합실에서 열린 6·25전쟁 75주년 기념 캠페인에서 군 장병들이 태극기 배지를 달고 있다. 이한형 기자

기획재정부가 국군장병 위문성금을 사실상 강제에 가까운 방식으로 걷어왔다가 내부 반발이 확산하자 모금 방식을 급히 수정했다. 그러나 공무원 급여를 활용해 군 위문 성금을 전달하는 제도 자체가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은 여전히 가라앉지 않고 있다.

9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기재부는 지난 2일 ‘2025년도 국군장병 등 위문성금 모금’ 안내 쪽지를 직원들에게 배포하며 기본급여 0.35%를 성금액으로 제시했다. 대상은 사무관·주사 등 전 직급(공무직, 인턴, 파견 제외)이었으며 납부에 동의하지 않는 직원만 따로 담당자에게 의사 표시를 해야 하는 구조였다. 기본급여의 0.35%는 고참 사무관 기준 약 2만원 선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내부 반발이 커지면서 이러한 모금 방식에 제동이 걸렸다. 비동의 의사 제출 마감일인 지난 8일, 기재부는 직원들에게 ‘국군장병 등 위문성금모금 변경안내’라는 제목의 문서를 다시 배포했다. 기존의 납부 비동의 신고 방식 대신 직원이 직접 ‘동의·비동의’를 선택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이 골자였다. 성금액도 0.35%·0.7%·1.0% 중 선택하도록 변경했으며, 참여기간도 10일까지로 연장됐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뒤늦게 기존 옵트아웃(opt-out·별도 거부 의사를 밝히지 않으면 자동 참여) 운영 방식을 알아차린 후 타 부처의 사례를 참고해 옵트인(opt-in·명시적으로 동의해야만 참여) 방식으로 바꿀 것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내부 익명게시판 ‘공감소통’을 중심으로 강제성 논란이 확산되자 여론 진화에 나섰다는 해석도 나온다.

모금 절차는 바뀌었지만 제도 자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여전하다. 특히 공무원 임금과 달리 병사 봉급은 크게 인상되면서 “여전히 공무원이 장병을 위해 성금을 내야 하느냐”는 회의론이 거세지고 있다. 올해 병장 월급은 기본급 150만원에 정부의 ‘내일준비적금’ 지원금 55만원을 더해 약 205만원 수준이다. 올해 9급 초임(1호봉) 공무원 보수는 200만882원이다.

한 기재부 관계자는 “공무원을 동원해 성금을 전달할 것이 아니라 애초에 군 복지 예산을 확대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며 “결국 부처 간부들의 생색내기 행사에 공무원 봉급이 활용되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국군장병 위문 성금 제도는 1960년대 말 민간 모금에서 출발해 1970년대 후반 국가보훈부(옛 원호처) 소관으로 정착됐다. 병사 급여와 군 복지가 열악했던 시절에는 역할을 했지만, 최근에는 병영 환경 개선과 병사 급여 인상이 이뤄져 제도의 필요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위문금 사용처가 불분명하다는 투명성 논란도 매년 뒤따른다. 2016년에는 위문금이 ‘보훈 외교’ 명목으로 주한미군 모범장병 초청행사에 9500만원이 쓰인 것이 알려지며 논란을 빚기도 했다.

해외 주요국과 비교해도 한국식 ‘공무원 위문 성금’ 구조는 예외적이라는 평가가 많다. 일부 국가에선 공공조직 내부에서 상하관계가 얽힌 모금·기부 관행이 공무원 행동강령이나 인권 가이드라인과 충돌할 수 있다고 보고 강제성 소지가 있는 모금 활동을 제한하기도 한다.

세종=이누리 기자 nur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