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에 대해 엔비디아의 ‘H200’ 칩 수출을 승인한다고 8일(현지시간) 밝혔다.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 당시인 2022년부터 유지해온 중국에 대한 인공지능(AI) 칩 수출 통제를 일정 부분 완화하는 조치로 그동안 수출 제한 완화를 위해 노력해온 엔비디아의 승리라는 평가가 나온다.
트럼프는 이날 트루스소셜에 “나는 미국이 승인된 중국 및 기타 국가의 고객들에게 국가안보를 강력히 유지할 수 있는 조건 하에 엔비디아의 H200 제품을 수출할 수 있도록 허용할 것임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통보했다”며 “시 주석은 긍정적으로 반응했다”고 적었다.
트럼프는 이어 “판매액의 25%가 미국에 납부될 것”이라며 “이 정책은 미국 일자리와 제조업을 강화하고 납세자에게 이익을 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올해 초 백악관이 저사양 ‘H20’ 칩 대중 수출 허가 대가로 매출의 15%를 가져가기로 한 것과 유사한 방식이다. 다만 중국 정부는 지난 8월 H20 칩 사용을 제한하라는 내용의 지침을 자국 기업들에 내려놓은 상태다. 일각에서는 고성능 칩을 확보하기 위한 중국의 전략이라는 관측도 있었다. 이에 따라 H200 수출에 대해 중국 정부가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가 남은 관건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트럼프는 엔비디아의 최첨단 AI칩 ‘블랙웰’과 곧 출시되는 ‘루빈’은 판매 품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H200은 블랙웰보다는 성능이 낮지만 현재 중국 수출이 승인된 H20보다는 성능이 약 6배 정도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는다. 트럼프는 “상무부는 세부 정책을 확정 중이며 AMD와 인텔, 다른 위대한 미국 기업들에도 같은 방식이 적용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과 데이비드 색스 백악관 과학기술자문위원회 위원장 등이 H200 중국 수출을 지지해왔다며 “엔비디아가 중국의 화웨이와 경쟁하면서도 중국이 AI 분야에서 미국을 추월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타협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 2022년 중국의 AI·군사 역량 강화를 우려해 고성능 AI칩 수출을 금지한 바 있다. 트럼프는 “바이든 정부는 기업들에 성능이 낮은 ‘저하 모델’을 만들도록 강요해 수십억 달러 손실을 초래했다”며 “혁신을 늦춘 끔찍한 결정이었다. 그 시대는 끝났다”고 말했다.
엔비디아는 성명을 내고 “미국 반도체 산업이 경쟁력을 갖고 고임금 일자리와 제조업을 지원할 수 있도록 허용한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을 환영한다”며 “상무부의 심사를 거친 승인된 고객에게 H200을 제공하는 것은 미국에 매우 유익한 균형 잡힌 접근”이라고 환영했다. 그동안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는 중국에 첨단 칩을 수출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백악관에 요청해왔다. 뉴욕타임스는 “이번 결정은 수개월 동안 백악관에 수출 제한 완화를 로비해온 젠슨 황의 큰 승리”라며 “엔비디아는 중국 수출 증가가 중국 기업들을 자사 기술에 의존하게 만들고 차세대 칩 개발 자금을 더 확보할 수 있게 할 것이라고 주장해왔다”고 전했다.
이번 조치가 중국의 AI 산업 추격을 허용해 미국의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될 것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바이든 행정부에서 백악관 기술·안보 담당으로 근무한 에런 바트닉은 WSJ에 “이번 조치는 중국의 반도체 역량을 상당히 끌어올릴 것”이라며 “미국이 수출 허용의 대가로 얻은 것이 뚜렷해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소속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도 최근 공개 서한에서 “미국 국가 안보를 거래하는 합의를 하기 위해 양당 의원과 행정부 전문가들의 의견을 무시하는 행위를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워싱턴=임성수 특파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