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한 중학교에서 지난 5월 숨진 채 발견된 고 현승준 교사의 아내가 제주도교육청과 학교 측의 대응에 깊은 실망을 드러냈다. 그는 8일 고인의 누나, 어머니 등 유가족과 기자회견을 가진 직후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그동안 제주도교육청의 태도에 참을 수 없는 분노와 절망을 느낀다”며 “이제는 학교도, 누구도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고인의 아내는 남편이 2005년부터 교직 생활을 시작해 줄곧 바쁜 일상을 보냈다며 2014년 첫 아이 출산 때조차 함께 하지 못할 만큼 업무에 시달렸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그런 남편이 학교에서 겪은 일로 생을 마치고, 사망 이후 학교 측이 이런 식으로 대응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눈물을 보였다.
현승준 교사는 학생 가족의 반복된 민원으로 어려움을 겪던 중 지난 5월 22일 새벽 학교 창고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고인 사망 후 제주동부경찰서 요청으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실시한 심리부검에서는 고인이 과중한 업무 스트레스에 시달렸으며, 학생 생활지도 과정에서 제기된 민원이 상황을 악화시킨 것으로 분석됐다.
고인의 책상에서 발견된 유서에는 아내에게 전하는 미안함과 해당 학생과 관련된 내용이 담겨 있었다.
유가족의 요청으로 제주도교육청은 지난 6월 진상조사반을 꾸려 조사에 착수했지만, 10월 국회 국정감사 과정에서 고인의 학교가 허위 경위서를 작성해 제출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커졌다. 경위서에는 교감이 고인의 병가 요청을 승인한 것으로 적혀 있었으나, 실제로는 민원 처리 후 가도록 반려한 것으로 확인됐다.
고인의 아내는 “장례식장에서도 교감은 병가를 허락했다고 말했지만 사실이 아니었다”며 “남편의 통화 녹음이 없었다면 진실은 묻혔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발인 다음 날 학교를 찾았을 때 남편의 책상과 사망 현장이 이미 정리돼 있었고, 남편이 평소 지니던 자동차 열쇠와 USB가 사라진 상태였다”고 밝혔다.
그는 “그날 밤 교무실에서 직접 유서를 찾지 못했다면 내용이 훼손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고도 말했다.
고인의 유가족이 공식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사망 7개월 만에 처음이다.
유가족은 이날 회견에서 “제주도교육청 진상조사반이 발표한 조사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교육부 차원의 진상조사위원회 구성을 요구했다.
또 제주도교육청은 국회에 허위 경위서를 작성해 제출한 관련 책임자들을 즉각 고발하고, 교육청이 경징계 처분을 요구한 학교 관리자에 대해서는 양형 기준을 다시 적용해 중징계를 내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교육청이 고발 조치 하지 않을 경우 유가족이 직접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아울러 김광수 제주도교육감의 공식 사과와 생계·치료 지원 대책, 근로복지공단·사학연금공단의 순직 인정 과정에 대한 협조도 요구했다.
유가족은 진상조사반에서 사임한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교육청은 고인 사망 후 한 달이 지나도록 조사 움직임을 보이지 않다가 유족 요청으로 뒤늦게 조사반을 꾸렸고, 유족이 참여했음에도 자료 검토 권한 없이 기존 자료만 전달받는 방식으로 운영돼 실망이 컸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국정감사에 선택적으로 자료를 제출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사임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또 경찰 조사 결과 발표를 이유로 자체 조사를 미루다가 정작 심리부검 결과는 반영하지 않은 채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했으며, 조사 일정과 내용도 유족에게 사전 공유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김광수 교육감에 대한 실망감도 드러냈다.
유가족은 “교육감은 방송과 국감장에서 시스템은 있었지만 고인이 혼자 처리해 도움을 줄 수 없었다는 취지로 말하며 책임을 고인에게 돌렸다”며 “이런 발언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모습을 보며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고 했다.
이날 회견에는 2023년 숨진 서울 서이초 교사의 유가족인 박두용 교사유가족협의회 대표도 참석했다.
박 대표는 “교육감과 만난 자리에서 고인의 아내가 아이들의 심리 치료비 지원을 요청했는데, 교육감이 검토해 보자는 말을 남기고 다음 일정을 이유로 자리를 떴다. 민원인을 대하는 것 같았다”면서 “비슷한 상황에서 위로를 표하는 다른 지역 교육감들과 분위기가 달랐다”고 했다.
박 대표는 “트라우마 치료의 골든타임이 1년 이내인데 답답한 부분이 많다”고 전했다.
제주=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