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종전안을 위한 미국과 우크라이나 간 협상이 진행 중인 가운데 유럽 정상들이 미국에 강한 불신을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미국이 배신할 수도 있다”는 표현을 쓰며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4일(현지시간) 독일 슈피겔, 키이우포스트 등은 지난 1일 유럽 정상 간 비밀 통화 녹취를 보도하며 이같이 전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미국이 명확한 안전보장 없이 영토 문제에서 우크라이나를 배신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큰 위험에 처했다”고 강조했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는 젤렌스키 대통령을 향해 “앞으로 며칠간 극도로 조심해야 한다. 그들이 우리 모두를 상대로 장난을 치고 있다”고 말했다. 슈피겔은 메르츠 총리가 언급한 ‘그들’이 종전안 협상 실무에 참여하는 스티브 위트코프 미국 대통령 특사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맏사위 재러드 쿠슈너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골프 친구’이자 트럼프 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 유럽 정상들의 ‘가교’라는 평가를 받는 알렉센데르 스투브 핀란드 대통령은 미국이 종전안 협상을 하면서 러시아와 동시에 접촉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지난 2일 모스크바에서 미국 대표단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회동 뒤 쿠슈너와 통화했다는 스투브 대통령은 “마이애미에서 (종전안)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미국 대표단이) 러시아와도 대화를 나눈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와 젤렌스키를 이들(미국 대표단)과 함께 있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당시 비밀 통화에는 메르츠 독일 총리,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스투브 핀란드 대통령, 마르크 뤼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 사무총장, 도날트 투스크 폴란드 대통령,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 요나스 가스 스퇴레 노르웨이 총리,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안토니우 코스타 EU 정상회의 상임의장 등이 참여했다.
프랑스 대통령실은 마크롱 대통령이 이와 같은 발언을 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독일 총리실은 논평을 거부했다.
슈피겔은 통화에 참여한 정상들이 위트코프 특사를 유럽으로 불러 회동하기를 원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위트코프 특사는 2일 푸틴 대통령을 만난 뒤 미국으로 돌아갔다.
미국은 우크라이나 종전안을 위해 협상을 이어가고 있다. 28개항 평화안을 19개항으로 줄이며 러시아의 요구사항을 대폭 줄였다. 지난달 30일 플로리다에서 막판 협상을 시도했지만, 구체적인 최종안은 도출되지 않았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