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제주시의 한 중학교 교사가 근무하던 학교에서 숨진 사건과 관련해 제주도교육청이 4일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도교육청은 교사가 시달린 민원에 대해 해당 학교 민원대응팀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았다는 문제를 지적하면서도, 책임 주체인 교장과 교감에 대해 경징계 처분을 해당 학교 사학법인에 요구하기로 결정해 논란이 일고 있다.
진상조사단장인 강재훈 제주도교육청 감사관은 이날 브리핑을 열고 “교사가 특이민원을 제기받았을 때 이를 지도·감독해야 할 학교 민원대응팀이 끝까지 책임있게 대응하지 않아 고인이 보호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고인이 압박감을 느낀 민원에 대해 교장과 교감이 규정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교육부는 2023년 7월 서울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 이후 특이민원 발생 시 기관이 대응하도록 하는 ‘교육 활동 보호 종합지원방안’을 발표하고, 각 학교가 학교장 책임하에 민원대응팀을 구성하도록 법령을 개정한 바 있다.
강 단장은 “학교 측은 한 차례 내부 협의와 교장과 민원인 간 통화가 있었기 때문에 민원대응팀이 작동했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교장의 일방적인 주장이고, 설령 사실이라 해도 학교장이 끝까지 책임지고 민원 처리를 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또한 교감이 “고인의 병가 요청을 민원을 이유로 반려하고, 사건 경위서를 허위 작성하는 등 대응 과정에 여러 문제가 확인됐다”고 덧붙였다.
특히 5월 19일 제주시교육지원청이 학교에 민원 사실을 통보했음에도 학교는 고인이 보고한 기존 민원 경과와 외부 민원 접수 상황을 종합적으로 파악하지 못했고, 대응 창구도 일원화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민원의 특성과 위험 수준을 검토하고 대응 방안을 마련하는 절차 역시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
고인의 업무 과중도 주요 요인으로 지목됐다.
고인은 3학년 부장을 맡아 담임과 고입 업무, 졸업앨범 제작, 현장체험학습 계획 등 다양한 업무를 동시에 수행했으며, 2025년도 초과근무시간은 2023년 대비 2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확인됐다.
강 단장은 “업무 과중과 학생 가족의 민원 제기 등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해 이런(사망) 결과가 초래된 것으로 판단된다”며 “민원 대응 절차를 지키지 않은 학교장과 교감에 대해 경징계를 요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도교육청의 진상조사 발표를 두고 논란도 커지고 있다.
민원 대응 부실을 인정하면서도 “민원 대응 부실로 고인이 사망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경징계 처분을 요구하는데 그쳤기 때문이다. 경징계는 견책·감봉 등 비교적 낮은 수준의 징계를 의미한다. 강 단장은 이에 대해 “고의 중과실이 아니고, 경징계 사유가 반복된 상황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도교육청은 사고 직후 “교권 보호 강화와 실효성 있는 대응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번 조치만으로는 교원이 안심하고 교육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어렵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강 단장은 “관리자의 역할을 규정한 민원 대응 매뉴얼이 구체적이 않은 부분이 있다”면서도 “너무 세부적이면 관리자 업무가 과중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도교육청은 수사 결과가 나온 뒤 진상 조사 결과를 공개하겠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경찰 조사 내용을 진상조사 보고에 반영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순직 인정 여부는 사학연금공단에서 판단할 사안이며, 관련 자료 요청 시 제공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진상조사 결과에 대해 유족이 신뢰성을 문제 삼을 경우 외부 감사를 요청하겠다고 했다.
이날 브리핑 현장에서는 전교조 제주지부와 민노총 제주본부 관계자들이 유족 의견이 조사 과정에 반영되지 않았다며 피켓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고인은 지난 5월 22일 새벽 자신이 근무하던 중학교 창고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교무실에 놓인 유서에는 학생 가족과 갈등으로 힘들었다는 취지의 내용과 가족에 대한 미안함 등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도교육청은 유족 요청에 따라 6월 30일 진상조사단을 꾸렸다.
제주동부경찰서는 관련자 13명을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했으나 민원을 제기한 학생 가족에 대해 협박 등 범죄 혐의점을 찾지 못해 최근 내사를 종결했다.
제주=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