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강화된 자동차 연비 규제를 대폭 완화한다고 발표했다. 전기차를 늘려가던 미국 자동차 시장이 가솔린으로 구동하는 내연기관차 중심으로 역행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3일(현지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포드·스텔란티스 등 자국 주요 자동차 제조사 경영자를 배석시킨 가운데 “교통부가 수천만대의 신차와 경트럭에 대한 연비 기준을 크게 완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행정부는 기업평균연비제(CAFE)에서 2031년형 승용차와 경트럭의 평균 연비를 1갤런당 기존 50.4마일(81.1㎞)에서 34.5마일(55.5㎞)로 낮출 계획이다. 이를 통해 5년간 총 1090억 달러(약 160조4000억 달러)가 절감되고, 신차 평균 가격은 1000달러(약 147만원)씩 인하될 것으로 트럼프 행정부는 보고 있다.
CAFE는 제1차 오일쇼크(1973~1974년) 직후인 1975년 미국 의회가 해외 석유 의존도 낮추기 위해 수립한 제도로, 자동차 연비의 최소 기준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임기 마지막 해인 지난해 6월 1갤런당 50.4마일로 상향한 연비 기준을 확정했다.
자동차 제조사는 자사 제품의 평균 연비를 CAFE 기준보다 높여야 하는데, 픽업트럭이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처럼 많은 연료를 소모하는 대형차를 팔아도 전기차 판매량을 늘리면 자사의 CAFE 기준을 낮출 수 있다.
트럼프는 이날 CAFE에 대해 “자동차 제조사들의 비용을 증가시켜 제품 가격을 인상하게 만들고 차량 성능을 크게 떨어뜨린다”며 “이는 ‘그린 뉴 스캠’(신종 녹색 사기)이며 소비자는 제대로 작동하지도 않는 자동차에 지나치게 많은 돈을 들이게 됐다”고 주장했다. ‘그린 뉴 스캠’은 바이든 행정부의 ‘그린 뉴 딜’을 비꼰 표현으로 풀이된다.
공화당이 다수당인 미국 상·하원은 앞서 지난 7월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OBBBA)을 통과시켜 자동차 제조사들이 CAFE 연비 기준을 준수하지 못해 내야 했던 벌금을 폐지한 바 있다.
NYT는 “바이든 행정부에서 강화된 연비 기준은 미국인에게 전기차를 선택하도록 설계된 것”이라며 “트럼프의 이번 발표는 바이든의 기후변화 대응 전략의 핵심 축인 전기차 보급 정책을 무력화했다”고 지적했다.
포드와 함께 미국 3대 자동차 회사로 평가되는 제너럴모터스(GM)와 스텔란티스는 대형 내연기관차를 생산하는 대표적인 업체로, 연비 기준 완화의 가장 큰 수혜를 입게 됐다. 이날 백악관을 찾은 안토니아 필로사 스텔란티스 최고경영자(CEO)는 “이번 조치가 연비 기준을 시장의 현실에 맞게 조정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트럼프 2기 초반 정부효율부(DOGE) 수장을 맡아 최측근으로 활동했던 일론 머스크 CEO의 전기차 기업 테슬라는 연비 규제 완화에 따른 상대적 피해를 입게 됐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내년 로봇산업에 주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피해를 상쇄했다. 테슬라는 전기차 외에도 휴머노이드를 생산하고 있다.
미국 정치매체 폴리티코는 이날 소식통들을 인용해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이 최근 로봇업체 경영자들을 연달아 만났다”며 “트럼프 행정부가 내년 로봇산업과 관련한 행정명령에 서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테슬라 주가는 이날 나스닥거래소에서 4.08% 상승한 446.74달러에 마감됐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