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4일 정상회담을 갖고 외교·통상 현안과 우크라이나 문제 등에 대해 논의했다. 양국은 무역 불균형을 해소하고 다자주의 체제 복원을 위해 이견을 좁히고 협력을 강화하기로 뜻을 모았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시 주석은 마크롱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마친 뒤 공동 기자회견에서 “중국과 프랑스는 모두 책임감을 지닌 독립적이고 주권적인 대국으로 다자주의의 깃발을 높이 들고 역사의 올바른 편에 굳건히 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 주석은 “양국은 유엔 창립 회원국이자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진정한 다자주의를 실천할 것”이라며 “‘디커플링(decoupling)’과 공급망 단절은 자국을 고립시키는 것과 같다. 보호주의는 국제무역 환경을 악화시킬 뿐 산업 구조조정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프랑스는 양국 관계를 중시하며 ‘하나의 중국’ 원칙을 확고히 준수한다”며 “중국과 상호 투자를 촉진하고 경제·무역·재생에너지 등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며 우호적인 문화 교류도 확대해 나가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이어 “프랑스는 중국 기업의 추가 투자를 환영하며 공정하고 차별 없는 사업 환경을 제공할 준비가 돼 있다”며 “다자주의를 고수하고 기후변화 대응, 생물 다양성 보호, 인공지능 거버넌스 등 분야에서 중국과 협력해 세계 평화와 번영에 기여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마크롱 대통령은 전날 베이징에 도착해 2박 3일간의 국빈 방중 일정에 돌입했다. 마크롱 대통령의 방중은 이번이 네 번째로 양국 수교 60주년을 기념해 지난해 시 주석이 프랑스를 방문한 것에 대한 답방 성격으로 해석된다.
5일 두 정상이 쓰촨성을 방문하는 일정으로 마크롱 대통령의 방중 일정은 마무리될 예정이다. 시 주석이 베이징 외의 지역 일정까지 동행하며 외국 정상을 대우하는 경우가 드물다며 파격적 예우를 갖춘 행보라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하지만 양국의 협력 확대에는 정치적 제약이 상당하다고 짚었다.
블룸버그 통신도 양국 정상이 최근 몇 년간 서로의 나라를 방문하며 강한 협력 관계를 과시해왔지만, 정치적으로 아직 많은 분열 요인이 남아있다고 평가했다. 지난해 프랑스가 유럽연합(EU)이 중국산 전기차(EV)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지지하면서 양국의 긴장은 고조된 상태다. 중국은 프랑스산 코냑에 최소 가격제를 설정하며 보복에 나섰다. 또 중국은 EU산 유제품을 대상으로 반덤핑 조사를 진행 중이다.
EU가 다음 달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경제안보 전략을 발표할 예정인 점도 협력 강화에 부담으로 작용한다. EU의 대중 무역적자는 2019년 이후 60% 가까이 늘었으며 프랑스의 대중 무역수지 역시 지속적으로 악화하고 있다. 중국의 희토류 수출 규제도 유럽이 우려하는 현안 중 하나다. 사실상 중국이 희토류 생산을 독점하고 있어 자동차·배터리·방위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날 양국은 항공우주, 원자력, 바이오의약품, 인공지능, 판다 보전 등 12개 협력 문서에 서명했다. 시 주석은 “중국의 다음 5개년 계획이 프랑스 기업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했지만, 구체적 약속은 제시하지 않았다. 이날 시 주석은 가자지구 재건을 위해 1억달러(약 1473억원)을 지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