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같은 현실을 살아내는 청년들에게…영화 ‘콘크리트 마켓’

입력 2025-12-05 00:02
대지진 이후 모든 것이 무너진 상황을 가정한 영화 ‘콘크리트 마켓’의 한 장면.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는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2023)의 엄태화 감독은 “펄펄 끓는 신선한 피가 느껴지는 영화”라고 호평했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대지진으로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 수북이 쌓인 건물 잔해더미 사이에 아파트 한 동만이 덩그러니 남겨졌다. 살아남은 아파트 주민들은 물물교환으로 간신히 생계를 이어간다. 먹고사는 것만이 중요한 세상에서 돈은 더 이상 아무런 가치가 없다. 돈뭉치를 내밀면 “쓸 수 있는 걸 가져와라”며 장작불에 휙 던져버리는, 이곳은 황궁마켓이다.

현금 대신 통조림이 화폐로 쓰인다. 냉혹한 자본주의와 시장경제 원리는 그대로 작동된다. 다량의 식량과 의약품을 장악한 자가 권력을 쥐고, 1~9층 층별로 위계질서가 자리 잡는다. 9층에서 호화롭게 사는 상인회장 박상용(정만식)은 ‘왼팔’ 태진(홍경)이 이끄는 수금조를 통해 매일 통조림을 상납받는데, 어느 날 나타난 소녀 희로(이재인)가 기존 질서를 뒤흔든다.

황폐한 가상 상황을 배경으로 한 영화 ‘콘크리트 마켓’이 3일 개봉돼 관객을 만나고 있다. 제목이 낯설지 않다. 배우 이병헌·박서준·박보영이 주연한 엄태화 감독의 2023년작 ‘콘크리트 유토피아’와 세계관을 공유한다. 하지만 완전히 독립된 서사를 다루는 별개의 작품이라는 게 제작사의 설명이다.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제작사 클라이맥스 스튜디오가 이 작품도 제작했다.

영화 ‘콘크리트 마켓’의 한 장면.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는 재난 이후 생존 구조를 ‘마켓’이라는 공간으로 압축해 보여준다. 이를 통해 극한 상황에서 결국 드러나는 인간의 생존 본능을 비춘다. 동맹과 균열, 배신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혼돈 속에서, 남다른 지략으로 상황을 주도해 나가는 희로의 존재감이 빛난다. 학교에서 배운 ‘수요와 공급’의 원리를 들어 “고체연료와 기름을 사들였다가 장마에 3배 받고 팔라”는 묘안을 내놓는 식이다.

회장의 지배하에 각자 계급에 맞는 일을 하며 안주하던 이들은 연대를 통해 ‘반란’으로 나아간다. 그 불씨가 된 희로의 대사가 여운을 남긴다. “여기에 주인은 필요 없어. 그냥 같이 살면 돼.” 평면적 악인 캐릭터와 단선적 전개의 아쉬움에도 메시지만큼은 선명하다. 주요 인물 연령대를 10~20대로 설정한 영화는 척박한 세상에서 살아남으려 분투하는 이 시대 청년을 비유한 듯하다.

영화 ‘콘크리트 마켓’의 한 장면.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종말 이후 세상을 그린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다. 홍기원 감독은 “생존 자체를 다루는 기존의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를 비틀어 10대가 주인공인 범죄물의 서사를 더했다”며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은 10대는 재난 이후 세계에서도 여전히 자신이 누구인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들이 극한 상황에서 어떤 결정을 해나가는지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출연 배우들도 젊은 세대가 공감할 이야기라고 기대를 당부했다. 이재인은 “안전하고 편안한 환경에서 성장하다가 성인이 되며 갑자기 들이닥치는 변화들이 개인에게는 재난 같은 것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정만식은 “현실에서도 사는 게 만만찮다는 걸 우리 모두 알기에 충분히 공감대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러닝타임 122분. 15세 관람가.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