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서면역 지하공간, 25년 문화의 향기로 채운 ‘기적의 무대’

입력 2025-12-04 10:11
부산레일아트는 지난달 28일 부산 서면 지하철역 문화공연장에서 ‘창립 25주년 기념식’을 열였다. 채광수(앞줄 왼쪽 두 번째) 대표와 박형준(앞줄 오른쪽 다섯 번째) 부산시장이 기념식을 마친 뒤 관계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부산 서면 지하철역은 하루 유동 인구 100만명에 달하는 부산의 중심지이다. 서면 지하철역 지하 공간이 지난 25년간 삭막한 통로에서 문화와 치유의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부산 지역 문화 예술인들이 주축이 돼 시민들의 일상 속으로 찾아가는 문화 프로그램인 ‘부산레일아트’가 창립 25주년을 맞았다. 부산레일아트(대표 채광수 목사)는 지난달 28일 부산 서면 지하철역 문화공연장에서 ‘창립 25주년 기념식’을 열였다.

이번 행사는 부산 시민과 예술인 그리고 교계가 함께 만들어온 기적 같은 시간을 회고하는 자리였다. 대표 채광수 목사는 25년 전인 2000년 1월 5명의 뜻있는 이들과 서울 사당역에서 지하철공연문화협의회를 발족했다. 이 협의회는 2001년 부산 서면지하철역에 둥지를 틀며 본격화했다. 당시 채 목사는 서울 대구 부산의 공연자들과 연합해 최초의 지하철 거리 공연을 시작했다. 그는 부산지하철 2호선 개통 기념 축하 연주회 등을 기획하며 시민 주도의 문화 예술 활동을 정착시켰다.

채광수 대표가 지난달 28일 부산 서면 지하철역 문화공연장에서 열린 ‘창립 25주년 기념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채 대표는 “그물을 던져 고기를 모으듯 문화를 통해 사람을 모으고 복음과 사랑이 스며들게 하는 사명을 감당해 왔다.”고 말했다.

이날 기념식에서 채광수 대표는 지난 25년 역사를 ‘그물 선교’라고 강조했다. 그는 “25년 전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한 재능기부 프로젝트로 시작해 마리아선교예술단, 수영로교회 워십댄스단, 영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등 수많은 팀의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우리는 그물을 던져 고기를 모으듯 문화를 통해 사람을 모으고 자연스럽게 복음과 사랑이 스며들게 하는 사명을 감당해 왔다”고 말했다.

부산레일아트의 활동은 단순히 종교적 차원을 넘어 지역 사회의 문화 활성화와 소외 계층을 위한 복지 차원에서도 큰 족적을 남겼다. 부산레일아트는 2002년 문화관광부 사단법인 등록에 이어 2008년 부산광역시 비영리 민간단체 2016년 전문예술단체로 지정돼 공신력을 인정받았다. 특히 서면 지하철역과 연산 지하철역 등에서 매주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연 800회 이상의 정기 공연을 기획해 국악 클래식 대중음악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을 시민들에게 선사했다.

박형준 부산시장이 지난달 28일 부산 서면 지하철역 문화공연장에서 열린 ‘창립 25주년 기념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박 시장은 “시민 주도의 문화 운동이 더욱 발전하고 확장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라고 말했다.

이날 박형준 부산시장은 격려사를 통해 “2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순수 자원봉사로 운영돼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살고 싶은 부산을 만들어가는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시민 주도의 문화 운동이 더욱 발전하고 확장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라고 말했다.

부산레일아트가 남긴 기록은 숫자로 그 위상을 증명한다. 지난 25년간 총 공연 일수 3540일, 참여 공연팀 8771팀, 출연자는 6만5971명에 달한다. 무엇보다 약 156만 7700명의 시민이 발걸음을 멈추고 이들의 공연을 통해 위로와 기쁨을 얻었다. 이는 스쳐 지나가는 일상의 공간을 시민과 가장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예술의 장으로 변화시킨 결과다.

부산레일아트는 지난달 28일 부산 서면 지하철역 문화공연장에서 ‘창립 25주년 기념식’을 열였다. 이날 서면 지하철역에는 어르신 200여명이 모여 초대 가수의 노래를 듣고 있다.

부산레일아트는 공연 활동에만 머무르지 않고 사회적 약자를 위한 섬김의 활동도 병행해 왔다. 고령화 시대 속에서 외로움을 겪는 노인들에게 문화행복나눔 프로그램을 제공해 삶의 활력을 불어넣었다. 2008년부터는 부산시로부터 ‘일일취업안내소’를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다. 매일 새벽 5시30분부터 일용직 근로자들에게 무료로 일자리를 알선하는 이 사역은 문화예술단체가 보여줄 수 있는 사회적 책임의 지평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는다. 부활절과 성탄절에는 역사 직원들과 기관사들에게 선물을 나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고하는 이들을 챙기는 세심함도 잊지 않았다.

박선제 목사는 축사를 통해 “로마가 도로를 통해 세계를 제패했듯 부산의 도시철도가 단순한 교통수단을 넘어 문화를 싣고 세계로 뻗어가는 통로가 되길 바란다. 부산레일아트가 뿌린 문화와 사랑의 씨앗이 더 넓은 세상으로 퍼져나가길 소망한다”고 말했다.

부산레일아트는 25주년을 기점으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시민의 곁에서 시민과 함께 호흡하며 삭막한 도심에 문화의 숨결을 불어넣는 부산레일아트의 다음 행보가 기대된다.

부산=글·사진 정홍준 객원기자 jonggy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