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군사전문기자 출신 의원의 계엄 사과 “씻을 수 없는 상처 준 軍 장병에 참회”

입력 2025-12-03 13:53
유용원 국민의힘 의원이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해군창설 80주년 제9회 안보세미나에서 환영사하고 있다. 뉴시스


유용원 국민의힘 의원이 비상 계엄 1주기를 맞은 3일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군 장병들과 국민에게 참회의 마음으로 사죄드린다”고 밝혔다. 유 의원은 군사전문기자 출신으로 30년 동안 국방부 한 곳만 출입한 이력이 있다.

유 의원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비상계엄 사태 1주년을 맞아 지난 정부 여당 의원으로서 무거운 반성과 책임의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다. 1년 전 오늘 군 최고통수권자와 일부 군 수뇌부의 잘못된 판단이 우리 사회에 큰 혼란을 남겼고, 무엇보다 軍에 지울 수 없는 깊은 상처와 아픔을 남겼다”며 “이 자리를 빌려 국민 여러분과 장병 여러분께 반성과 참회의 마음을 담아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유 의원은 “이 자리에 서기까지 많은 고민을 했다. 어떤 당직도, 원내 직책도 맡고 있지 않은 제가 이 자리에 서는 것이 과연 적절한지, 혹여 이 사과가 또 다른 정치적 논란을 불러일으키지는 않을지 두려운 마음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러나 고민의 시간이 지날수록 한 가지는 분명했다”며 “잘못 앞에서는 정치적 이해득실을 계산할 것이 아니라 진솔하게 책임을 나누는 일이 먼저라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유 의원은 “지난 1년 동안 저는 여러 장병들을 만나 계엄 사태 이후 그들이 겪어야 했던 변화와 상처를 들었다”며 “시민들의 따가운 시선이 두려워 더 이상 군복을 입고 출퇴근하지 않는다는 어느 상사의 이야기, 훗날 아이가 ‘아빠는 그날 무엇을 했냐’고 묻는다면 뭐라 답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청년 대위의 고민, 그리고 부하들에게 ‘우리는 국가와 국민을 지키는 군대’라고 가르치지만 그 말이 의심을 받을까 두렵다는 중령 대대장의 진솔한 고백, 그 담담한 고백은 우리 軍이 얼마나 큰 상처를 품고 있는지 깨닫게 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날 계엄령 선포 직후 국회로 출동했던 장병들, 그리고 군의 작전 매뉴얼에 따라 계엄 후속 조치에 나섰던 대다수 장병들에게는 그 어떤 책임도 없다”며 “그들은 당시 상황의 전모를 알 수 없는 위치에 있었고, 그저 평소 신념처럼 지켜온 ‘상관의 명령에 복종한다’는 군인의 신념에 따라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수행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날의 잘못은 군인의 사명감과 신념을 정치적 목적에 이용하며 위법한 명령을 내린 당시 군통수권자와 일부 군 수뇌부에게 있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민주당 책임론’에 대해서도 “민주당의 입법폭주와 줄탄핵이 계엄이라는 극단적이고 불법적인 사태를 초래하는 데 영향을 끼쳤다 하더라도, 군을 정치적 도구로 전락시킨 것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이어 “당시 집권여당 국방위원으로서 상황이 그 지경에 이르기까지 계엄의 정황을 사전에 알지도 못했고, 일이 벌어진 뒤에도 더 단호하게 움직이지 못했던 저 역시 이 잘못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고 반성했다.

유 의원은 계엄 사태 이후 군을 향한 과도한 낙인찍기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명했다. 그는 “지금의 상황은 그 범위를 넘어 軍 전체를 향한 과도한 의심과 낙인으로 번지고 있다. 최근 삼각지와 계룡대 일대에는 각종 투서와 음해가 난무하고, 야전 부대 간부들 사이에서는 ‘전 정부 군인’, ‘현 정부 군인’, ‘계엄 가담자’, ‘미가담자’와 같은 구분이 생겨나고 있다”며 “이러한 혼란이 계속된다면 지휘체계는 흔들릴 것이며, 군은 분열되며 장병 간 신뢰는 무너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유 의원은 “지금 군에 필요한 것은 ‘지속적인 단죄’가 아니라, 책임을 명확히 규명하고 하루빨리 軍을 정상화하는 일”이라며 “불법 계엄 적극 가담자는 명명백백 가려내야 하지만, 명령의 배경을 모른 채 오로지 ‘상관의 명령을 완수하겠다’는 군인의 사명감 하나로 임무를 수행한 장병들의 마음까지 의심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 의원은 “제가 오늘 드리는 이 사과는 당의 공식 입장도, 모든 동료 의원들의 일치된 의견도 아니다”라며 “그러나 국민께서 뽑아주신 비례대표 국방위원으로서 오늘의 사과가 그저 말에 그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정우진 기자 uz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