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이 1년을 맞은 가운데 45년전 내란을 주도한 계엄군 지휘관들은 현충원에 안장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각에서는 이참에 국립묘지 안장법을 뜯어고쳐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3일 5·18기념재단 등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5·18 단체 관계자들과 광주시민 등 20여명은 5·18민주화운동 책임자들의 현충원 안장 실태를 살피기 위해 국립대전현충원 탐방에 나섰다. 국립대전현충원에는 1979년 12·12 군사반란과 1980년 5·18민주화운동을 주도한 신군부 인사 15명이 묻혀 있다.
이중 대장으로 예편한 신군부 핵심 유학성(당시 국방부 군수차관보)과 1980년 5월 전남대·조선대 대학생 시위 진압을 지시한 진종채(2군사령관), 5·18 당시 계엄군 지휘관 소준열(전교사령관)은 대전현충원 내 명당으로 꼽히는 장군1묘역에서도 볕이 가장 잘 드는 곳에 안장돼 있다. 이를 본 5·18 단체 관계자들은 “무고한 시민들을 죽이고도 천수를 누리고, 죽어서도 호강하고 있다” “파묘해야 한다”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이번 탐방을 이끈 정성일 평화통일교육문화센터 기획홍보팀장은 “유학성은 법원에서 내란죄가 인정됐지만, 대법원 확정 판결을 열흘 앞두고 사망해 현충원에 안장될 수 있었다”며 “소준열은 당시 검찰이 기소 조차 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소준열은 지난 2018년 5·18기록관이 38년 만에 공개한 영상에서 광주시민들을 진압한 뒤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이 알려져 공분을 샀던 인물이다.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에 이어 보안사령관을 지낸 박준병(20사단장)도 대전현충원 장군2묘역에 안장돼 있다. 그가 지휘한 20사단은 5·18 당시 시민들을 무자비하게 진압해 악명이 높았다. 정 팀장은 “진압작전이 얼마나 무자비 했는지 5·18 이후 호남 출신 20사단 장병들이 휴가 때 고향에 가면 사단 마크를 떼고 다녔다는 일화는 이미 유명하다”며 “박준병은 12·12 당시 20사단 병력을 출동시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내란재판에서 유일하게 무죄를 받았다”고 말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들로부터 반란을 막으려 했던 장태완 전 수도경비사령관, 김진기 헌병감 등도 함께 대전현충원에 안장돼 있다. 이날 5·18 단체 관계자들은 강제퇴역 뒤 비극적인 삶을 산 장 전 사령관 등의 묘 앞에서 묵념했다.
정 팀장은 “반란군과 반란군에 맞섰던 이들이 현충원에 함께 안장돼 있는 이 현실이 내란과 불법 계엄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우리 역사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며 “지금이라도 국립묘지 안장법을 손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목현 5·18기념재단 이사장도 “국립현충원은 단순한 매장지가 아니라 국가가 인정하는 최고의 명예 공간이자 공공기억의 교과서”라며 “반헌법적 행위와 국가폭력의 책임까지 면밀히 검증하는 새로운 안장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고 밝혔다.
대전=이은창 기자 eun526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