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사망교사’ 업무용 노트북엔 새벽 2시까지 경위서 작성… 경찰 ‘무혐의’ 내사 종결

입력 2025-12-02 16:37 수정 2025-12-02 17:50
지난 5월 30일 제주도교육청 앞마당에서 제주 모 중학교 사망 교사 추모문화제가 열리고 있다. 문정임 기자

지난 5월 제주의 한 중학교 창고에서 숨진 채 발견된 40대 교사 사망사건과 관련해 경찰이 입건 전 조사(내사)를 종결하기로 했다.

제주동부경찰서는 2일 기자 브리핑을 열고 “학생 가족의 민원 제기가 고인에게 극심한 스트레스를 준 사실은 인정된다”면서도 “협박죄가 성립하려면 공포심을 일으킬 정도의 해악 고지가 있어야 하는데 이번 사건의 민원 내용과 경위, 연락 횟수 등은 사회 통념상 용인되는 범위로 판단돼 범죄 혐의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경찰은 “현재로선 내사 종결이지만, 추가 증거가 나오면 재수사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내사 종결은 혐의점이 없거나 증거가 부족해 정식 사건으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 내려지는 처분이다.

동부서는 지난 5월 22일 사건 발생 직후 경찰서장을 팀장으로 전담팀을 꾸려 고인이 학생 가족으로부터 협박이나 스토킹을 받은 정황이 있었는지를 조사해왔다.

고인과 피혐의자, 피혐의자 모친의 휴대전화를 디지털 포렌식하고, 유족과 학생 가족, 학교장, 교감, 동료 교사 등 13명을 참고인으로 조사했다.

고인의 노트북과 업무용 컴퓨터, 수첩, 메모 등도 확보해 분석하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심리 부검을 의뢰해 결과를 반영했다.

이번 경찰 내사 과정에서는 조사 결과와 별개로, 고인이 과중한 업무와 민원 제기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온 사실이 확인됐다.

과학 교사였던 고인은 3학년 학생부장을 수년간 맡으며 학생 생활지도와 동아리 학생 지도, 축제 준비 등 수업 외 업무에 시달렸던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고인이 휴일없이 매일 학교에 출근해 늦게까지 근무했으며, 여러 학교 업무가 과중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앞서 유족은 지난 25일 기자회견에서 “남편은 학교 일과가 끝나면 집으로 와 아이들의 식사와 학원 준비를 챙긴 뒤, 낮에 정리하지 못한 업무를 마무리하기 위해 다시 학교로 향하곤 했다”며 “기본 업무 외에도 학부모 설명회, 현장체험학습, 졸업앨범 촬영 업무 등으로 하루도 편히 쉬는 날 없이 일했다”고 진술한 바 있다.

업무용 컴퓨터 분석에서는 고인이 사망 이틀 전인 5월 20일에 새벽 2시38분까지 민원과 관련한 경위서를 작성했던 것으로도 나타났다. 이날은 학생 가족이 교육청에 민원을 접수한 사실이 학교 측에 전달된 다음 날이다.

고인은 출결 등의 문제로 학생을 지도하는 과정에서 지난 3월부터 사망 전까지 석 달간 학생 가족과 50여건의 통화와 문자를 주고받았다.

사망 6일 전인 5월 16일 학생 가족이 제주도교육청에 고인에 대한 민원을 접수했고, 18일 학생 가족이 학교를 방문하겠다고 하자 고인은 월요일인 19일 교장에게 민원 접수 사실과 학생 누나가 학교에 오기로 한 사실을 보고했다.

그러나 교장은 이날 다른 업무로 학생 가족의 전화를 받지 못했고, 고인 사망 전까지 학생 가족은 학교를 방문하지 않았다.

고인은 5월 초 건강상의 문제로 시술을 받고, 통증과 두통 등에도 시달려온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사망 전 고인이 몸이 아파 병가를 신청했지만 교감이 민원 처리 후 가라고 했고, 유족에게 감봉 등의 처벌을 받을 것 같다고 말한 점 등으로 미루어 학교 측으로부터 민원 처리에 대한 압력을 받았을 개연성이 있다”고 말했다.

또 “심리부검 결과 등을 종합해 볼 때 고인이 높은 수준의 불안감으로 제대로 잠을 자지 못 했고, 억울함, 분노감으로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고인은 4장의 유서를 남겼다. 1장은 학생과 학교에 대한 내용이고, 나머지 3장은 아내 등 가족에게 미안함 등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경찰 처리 결과가 발표되자 교원단체들이 잇따라 성명을 냈다.

전교조 제주지부는 “고인은 사망 이틀 전 학교 내부의 처리 과정과 자신의 어려움을 상세히 기록한 경위서를 직접 남길 만큼 절박한 상황이었다”며 “고인의 어려움을 관리해 줄 장치가 작동되지 않은 부분에 대해 명확히 밝힐 것”을 제주도교육청에 촉구했다.

제주교사노조는 “교사 개인을 죽음까지 내몰게 한 악성 민원에 대해 사회적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구조적 현실에 깊은 유감과 분노를 느낀다”며 “제주도교육청은 명백한 조사 결과와 재발 방지의 이정표를 제시하라”로 요구했다.

고인은 지난 5월 22일 자신이 근무하던 학교 창고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교무실에서 유서가 발견됐다.

지난달 제주시교육지원청 지역교권보호위원회는 학생 보호자의 행위를 교육활동 침해로 공식 인정하고, 보호자에게 특별교육 8시간 이수를 명령했다.

한편 제주도교육청은 4일 오후 2시 교사 사망사건에 대한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제주=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