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심을 월즈에 보내고 싶다는 꿈은 여전하다”

입력 2025-12-02 00:59

1일 서울 구로구의 팀 연습실에서 농심 레드포스 박승진 전 감독·현 코치를 만났다. 2025시즌 동안 농심의 지휘봉을 잡았던 박승진 감독은 최근 코치로 보직을 변경했다. 이곳에서 어떤 역할을 맡든, 5년 넘게 몸담은 팀을 LoL 월드 챔피언십으로 보내고 싶다는 꿈은 여전하다고 그는 말했다.

-감독으로서 오프시즌부터 준비하고 치렀던 2025시즌을 총평한다면.
“감독이었던 내가 너무 앞만 보고 달리느라 팀도 여유가 없었다. 팀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감독으로서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해야 했는데 그러기보다는 임시방편과 궁여지책에 의존했던 것 같다. 성적이 좋았던 시즌 초반에는 선수와 팀이 무엇을 잘하는지를 잘 파악해서 각 선수의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숨기는 밴픽을 했다. 그런데 패치가 거듭되고 팀의 단점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뒤로는 밴픽의 완성도가 떨어졌다. 승리 플랜을 만들지도 못했고, 선수의 개인 기량에 과도하게 기댔던 거 같다.
선수 교체도 너무 잦았던 것 같다. 교체 결정은 빠르게 내렸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기존 주전 선수들을 조금 더 믿어줬다면 어땠을까 싶다. 반대로 교체로 들어온 선수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줬다면 어땠을까도 싶다. 결국 인게임의 근본적인 문제를 건드려야 했는데 그걸 너무 쉽게 선수 교체로 해결해보려 했던 거 같다.
레전드 그룹에 들어간 뒤 극단적인 수를 많이 뒀던 것도 아쉬움이 남는다. 농심 팬분들께선 엘리스 픽을 많이 싫어하셨던 거로 안다. 계속 지기만 하니까 한 번은 이겨야 분위기를 바꿀 수 있을 것 같아서 썼는데 결과적으론 악수가 됐다. 그래도 돌이켜보면 재밌는 일이 많았던 시즌으로 기억에 남을 것 같다.”

-LCK컵과 정규 시즌 2라운드까지는 팀이 기대 이상의 성적을 냈다.
“선수들의 폼도 좋았다. ‘기드온’ 김민성이 강타를 잘 써서 이겼던 건 아직도 기억난다. 민성이가 아타칸부터 시작해서 드래곤, 바론까지 결정적인 스틸을 여러 번 해냈다. ‘킹겐’ 황성훈도 ‘제·도·기(최우제·최현준·김기인)’가 부럽지 않은 수준의 퍼포먼스를 꾸준히 유지했다.”
LCK 제공

-아이오니아 패치 이후 경기력이 하락했다고.
“원래는 첫 드래곤이 5분, 첫 유충이 6분에 나왔다. 아이오니아 패치 이후로 유충이 두 번에서 한 번, 8분에 나오는 걸로 조정됐다. 그리고 탑라인에 2명 이상이 서면 경험치 손실이 발생해 첫 라인전에선 라인 스와프를 할 수 없게 됐다. 사실 이 패치가 우리에겐 치명적이었다고 생각한다.
농심은 교환을 정말 잘하는 팀이었다. 용을 주는 대신 유충을 먹든지, 유충을 주더라도 반대쪽에서 바텀 다이브를 한다든지 하는 방식의 교환을 잘했다. 유충이 6분에 나왔을 땐 용에 턴을 쓴 팀이 곧바로 유충까지 턴을 이어 쓰기가 어려웠다. 유충이 8분에 등장하니까 그런 양상이 완전히 바뀌었다.
첫 라인전 스와프까지 막히면서 라인전의 중요도가 굉장히 올라갔는데, 우리는 바텀 라인전이 강한 팀은 아니니까 전에 없던 문제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기존에는 통하던 기교가 패치 이후부턴 먹혀들지 않았다. 그래서 감독으로서 2군 선수들을 교체 기용해보기도 했는데 결과가 안 좋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지우’ 정지우를 계속 믿어줘야 했는데 내가 지도자로서 부족했던 셈이다.”

-녹서스 패치는 팀과 잘 어울렸는데 아이오니아 패치는 상극이었던 건가.
“나는 LoL에서 바텀이 가장 중요한 라인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LoL은 어느 팀이 더 밴픽을 잘하는지, 더 수행 능력이 좋은지로 승패가 갈리는데 거기서 바텀이 차지하는 비중이 아주 높다. 바텀이 5분까지 라인전을 잘해놓으면 용을 먹고 위로 올라가서 8분에 유충을 먹는다. 오브젝트는 결국 바텀이 먹여주는 것이다.
월즈에서 2위를 한 KT를 보면 선수들의 폼도 정말 좋았지만 나는 코칭스태프니까 그들이 바텀을 이기는 밴픽을 추구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BFX가 좋은 성적을 낸 것도 궤가 같다고 본다. 선수단과 여러 차례 토론했던 부분이기도 한데 BFX 게임을 보면 짜임새가 아주 좋았다. 바텀 듀오가 정글러와 발을 맞춰 움직이고 이를 통해서 오브젝트를 잘 챙겼다. 그만큼 아이오니아 패치 이후에 전반적으로 바텀 라인전의 중요도가 올라갔다.
다시 우리 팀 얘기로 돌아가서, 결국 우리는 그 점을 극복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라인전 단계에서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챔피언들도 골라도 보고, 어떻게든 라인 스와프로 구도를 비틀어보려고도 했는데 끝내 통하지 않았다.
레전드 그룹에서 연패를 당하면서부터는 선수들도 조급해졌던 것 같다. 질 게임이 아닌데 지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선수단 분위기가 급속도로 가라앉고, 신뢰가 깨지고, 그러니까 경기력이 저조해지는 악순환이 발생했다. 이제 그걸 또 막으려다 보니까 엘리스가 튀어나오고.(웃음)”

-사실 오늘 준비한 질문 중 하나가 ‘왜 ‘리헨즈’ 손시우에게 엘리스를 시켰는가’였다.
“엘리스는 지금도 잘 쓰면 좋은 픽이라고 생각한다. 대표적인 조합이 케이틀린·엘리스인데 피어리스 특성상 몇 가지 픽이 빠지면 티어가 아주 높아진다. 그런데 올해는 뽑지 말아야 할 때도 엘리스를 뽑은 게임이 많았다. 그 밴픽 구도에서 베스트 픽은 아니었는데 한 판이라도 이기고 싶으니까, 간절하니까 선수들에게 자신 있는 챔피언을 시켰다.
2024년에도 비슷한 기억이 있다. 캐리형 원딜인 지우에게 세나·직스만 주는 걸 팬분들께서 답답해하셨다. 나중에 VOD를 돌려 보는데 농심이 세나를 고르니까 팬분들이 탄식하시는 게 들리더라. 그래서 답답해하신다는 걸 알았다. 그런데 그때도 세나 조합의 승률이 가장 높아서 줬던 거였다. 엘리스도 작년의 세나와 비슷한 결이라고 본다. 팬분들께서 답답해하시는 건 충분히 이해한다. 결과적으로 성적을 못 냈으니까.”

-해설위원들은 농심이 ‘날빌’에 과도하게 의존한다고 혹평하기도 했다.
“그들이 맞는 얘기를 했다고 생각한다. LoL이란 게임에서 정석과 비정석을 딱 잘라 구분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농심이 했던 게 정석은 아니라고 본다. 소위 엘리스를 비롯한 밴픽적 ‘날빌’만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사실 레전드 그룹에 간 뒤로 엘리스는 4번 골랐다. 그러니까 단순히 픽 때문에 ‘날빌에 의존한다’는 평가를 받은 건 아니다. 운영적으로 짜임새가 부족했고, 무리한 다이브를 비롯한 리스크 높은 선택들을 많이 했기 때문에 그런 평가를 내렸을 것이다. 우리 선수들이 각자 개성 넘쳤고, 변수 창출을 잘하고 선호하기도 했다.”
LCK 제공

-케어가 필요한 포지션인 정지우를 너무 오랫동안 혼자 뒀다는 평가도 나왔다.
“아무래도 계속 지니까 자연스럽게 그런 플레이를 하게 된 거 같다. 선수들도 점점 이기고 싶은 마음이 커지니까 ‘내가 뭐라도 해야 한다’ ‘이대로 가면 못 이긴다’는 생각으로 극단적인 움직임을 취하게 됐을 거로 본다.
이것도 내가 손시우한테 엘리스를 하자고 주문한 것과 비슷하다. 무리한 다이브를 한다든지, 정지우를 방치하고 다른 라인에 자원을 투자한다든지. 결국 심리적인 요인이 크게 작용했던 것 같다. 내가 감독으로서 그런 문제를 조율하고 해결해야 했는데 정말 쉽지 않다고 느꼈다.”

-레전드 그룹에서 전패를 당했다. 그래도 레전드 그룹에 가는 게 낫다고 보나.
“레전드 그룹에 가는 게 낫다고 보는데, 가서 전패할 거면 라이즈에 가는 게 낫다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어느 팀이 전패를 예상하고 가겠나? 나는 다시 2라운드 막바지로 돌아갈 기회가 생기더라도 레전드 그룹에서 싸우는 걸 택하겠다. 그 대신 레전드 그룹을 준비하고 경기를 치르는 과정에 변화를 주고 싶다.
올해 우리와 같이 레전드 그룹에 들어갔던 KT처럼 ‘티·젠·한’ 상대로 2승 정도만 챙길 수 있다면 라이즈보다 레전드 그룹에서 얻는 이점이 훨씬 크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결국 월즈에 나갈 팀은 티·젠·한을 어떤 방식으로든 잡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 정도의 잠재력이 있는 팀이라면 무조건 레전드 그룹이 낫다.”

-밴픽을 준비하는 코칭스태프로서는 상·하위 스플릿을 구분해놓은 게 더 편했는지.
“밴픽만 놓고 봤을 때는 레전드·라이즈 그룹을 나눠놓은 게 더 편하다. 계속 같은 팀끼리 만나니까 우리도, 상대도 서로 뭘 고를지 알고 있다. 특히 첫 세트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강팀을 상대로 어떤 밴픽을 해서 어떤 승리 플랜을 만드는가는 그와 별개의 문제로 까다로웠다. 그리고 강팀들만 연달아 만나니까 심리적으로 위축되는 것도 있었다.”

-KT에 연패한 게 아쉬울 듯하다. 왜 KT를 잡기가 힘들었나.
“결국 ‘비디디’ 곽보성의 존재가 컸던 거 같다. 우리가 이길 만해지면 탈리야로 이상한 각을 만들어내더라. 우리도 ‘칼릭스’ 선현빈이 기대 이상으로 잘해줬지만 곽보성은 역대급 시즌을 보냈으니까. 곽보성을 못 잡으니까 KT 상대로도 연패했고, 선수단은 전전긍긍하다가 점점 더 깊은 수렁에 빠졌던 거 같다. 반대로 KT도 농심과 비슷한 처지였는데 우리 상대로 연패를 끊으면서 팀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반등시켰던 것 아닐까.”
LCK 제공

-피어리스 도입 이후 코칭스태프로서 밴픽을 준비하는 건 어떤 차이가 있었나.
“피어리스여서 밴픽이 힘들다는 느낌은 못 받았다. 오히려 재밌었다. 첫 세트 때 빠진 챔피언들이 있으니까 그걸 토대로 두 번째 세트에 티어 리스트를 조정하고, 조합을 새로 맞춰나가는 과정이 재밌었다.
예전엔 선수들이 소위 ‘펑고’라고 하는 라인전 구도 연습에 시간을 많이 투자했다. 올해 라인 스와프와 피어리스 때문에 그런 구도 연습과 분석의 중요도가 많이 내려갔다. 대신 순간적으로 견적을 보는 능력과 판단력이 중요해졌다.
또 조합을 짜는 능력도 중요해졌다. 단순히 돌진과 교전 조합 외에도 리치가 긴 챔피언들로 오브젝트에서 상대의 진출을 막는 조합이 있고, 적당히 밸런스를 맞추는 조합도 있다. 그래서 다양한 챔피언과 조합을 소화할 수 있는 선수들이 빛났던 시즌 같다. 쉽게 말해서 ‘롤 잘하는 선수들’이 유리해졌다.
이제 딱 한 가지 방향성과 콘셉트를 잡고, 그것만 연습해서는 이기기가 어렵다. 소위 명장으로 불리는 감독들은 피어리스 때문에 손해를 볼 거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들은 본인만의 게임 철학과 승리 플랜이 뚜렷한데 피어리스 도입 이후로는 매판 기조가 바뀌니까 더 어려움이 있지 않았을까.”

-피어리스보다는 라인 스와프가 밴픽에 더 큰 영향을 끼쳤나.
“그랬다. 정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예를 들면 나르 같은 챔피언은 라인 스와프 때 불편한 점들이 있다 보니까 못 고른다. 제이스나 케넨도 같은 맥락으로 못 고른다. 결국 라인전을 잘하는 선수들, 그중에서도 특히 특히 탑라이너들은 라인 스와프 때문에 손해를 많이 봤다고 생각한다.
라인 스와프 때문에 단순한 라인전 상성만으로 밴픽을 구상하기가 힘들어졌다. 나르 대 크산테 구도를 상정하고 게임에 들어갔는데 막상 크산테는 바텀에 있고 상대 원딜이 탑에 서 있으니까 나르를 뽑은 의미가 사라지지 않나. 라인 스와프가 챔피언의 티어에 너무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제 패치만으로는 라인 스와프를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프로들이 라인 스와프의 맛을 알아버린 이상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긴 힘들다. LCK가 ‘몇 분 이전에 원딜이 탑으로 가면 패배’라는 부자연스러운 규칙을 만든 게 아닌 이상 라인 스와프를 막기 어려울 것이다.”
농심 레드포스 제공

-2026시즌엔 코치로 최인규 신임 감독을 보좌한다.
“2025시즌의 선수단도 좋았지만 2026시즌은 더 강력해 보인다. LPL에서 오랫동안 좋은 활약을 펼쳤던 ‘스카웃’ 이예찬까지 합류해서 더 기대된다. 새 선수단이 스크림을 몇 판 해봤다. 아직은 조율해나가야 할 부분이 많아 보인다. 베테랑들은 각자의 개성과 이고(ego)가 강하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다.
우리 팀에는 국제대회 파이널 MVP가 3명이나 있다. 그만큼 고점이 가장 높은 것도 우리 농심이라 자부한다. 게임을 바라보는 선수단의 시선만 하나로 일치시킨다면 정말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 거 같다.”

-가장 활약을 기대하는 이적생을 꼽는다면.
“개인적으로는 ‘태윤’ 김태윤의 활약에 기대를 걸고 있다. 개인적으로 김태윤은 2023년에 ‘준’ 윤세준과 바텀 듀오였을 때 가장 잘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엔트리 변화를 비롯한 여러 가지 이유에 휩쓸리면서 본인도 자신감을 잃었던 거 같다. 올해 LPL에 가서 자신감과 본인의 기량을 되찾은 거 같은데 내년 LCK는 김태윤에게 올해와 또 다른 새로운 증명의 장이 될 것이다. 지켜보는 재미가 있지 않을까.
김태윤은 게이머가 되기에 좋은 성격이다. 좋은 성격이라는 게 착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스크림에서 불편한 바텀 구도가 나오니까 황성훈한테 ‘형, 이거 바텀 불편한데 1레벨 스와프 하자’고 요구하더라. 그렇게 성훈이를 바텀으로 보내면서 ‘형, 어차피 바텀 가도 초반에 맞아야 하는데 탑 부시에 와드 쓰고 가’라고 콜을 했다. 원딜은 잘하려면 그런 뻔뻔하고 센 성격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끝으로 농심 팬들에게 전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올해 감독으로서 정말 잘하고 싶었는데 팬분들은 물론이고 나 스스로도 만족할 만한 성적을 내지 못했다. 사실 처음 코치를 시작하면서 세운 나만의 목표는 ‘마이너리그여도 좋으니까 월즈 한번 가보고 싶다’였다. 그런데 농심에 오랫동안 몸담고, 이 팀에 애정이 쌓이다 보니까 ‘농심을 월즈에 보내고 싶다’로 바뀌었다. 올해 그 목표가 가장 가까워 보여서 더 여유가 없어졌던 거 같다. LCK의 경쟁력이 점점 올라가는데 우리 팀의 성적도 좋으니 ‘올해 아니면 힘들지 않을까. 올해 꼭 월즈에 가고 싶다’하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더 시야가 좁아졌던 거 같다. 팬분들께서 시즌 초반에 기대가 크셨을 텐데 결국 거기에 부응하지 못한 점도 이 자리를 빌려서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즌이 끝날 때까지 응원해주신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도 전하고 싶다. 2026시즌에는 농심에 코치로서 헌신해서 팀이 역대 최고로 높은 곳까지 올라갈 수 있도록 지원하고, 팬분들께서 만족하실 만한 경기력을 보여드릴 수 있도록 만들겠다.”

윤민섭 기자 fla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