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만의 재회…‘산타 소원상점’이 이룬 윤도 형제의 소원

입력 2025-12-01 13:53
초록우산은 추운 겨울 산타의 선물을 기다리는 아이들에게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선물하자는 취지로 2007년부터 연말 대표 캠페인 ‘산타원정대’를 운영하고 있다.

국민일보와 초록우산 경기북부지역본부는 연말을 맞아 우리 사회 곳곳에서 아이들의 곁을 지키며 희망을 전하는 ‘현실 산타’들의 이야기를 조명하는 공동기획 캠페인 ‘산타의 이야기, 내 곁에 산타!’를 진행한다.

이번 캠페인은 연말 나눔의 의미를 되새기고 후원자·자원봉사자·수혜 아동 등 평범한 이웃들이 만들어가는 따뜻한 이야기를 통해 나눔 문화 확산을 이끌기 위해 마련됐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아이들의 삶에 변화를 만들어가는 이들의 진심을 담아 “누구나 누군가의 산타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산타 소원상점’ 배너를 윤도와 형 연호가 들고 있는 모습. 초록우산 제공

“어쩔 수 없이 헤어졌던 엄마를 만나고 싶어요”라는 크리스마스 소원을 이룬 윤도(가명)를 만나 ‘산타 소원상점’ 참여 이야기를 들어봤다.

▲ “제 소원은 옥희쌤 엄마를 만나는 것입니다”

“제 소원은 옥희쌤 엄마를 만나는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헤어지게 된 옥희쌤 엄마를 다시 만날 수 있게 도와주세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산타 소원상점’ 99번째 소원편지에 적힌 초등학교 1학년 박윤도(가명)의 글이다. 또박또박 적은 글과 함께 연필로 그린 그림 속에는 두 팔로 윤도를 꼭 끌어안고 웃고 있는 한 사람이 있었다. 윤도에게 이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엄마’였다.

올해 ‘산타 소원상점’의 99번째 소원의 주인공은 윤도다. 윤도는 캠페인에 참여하며 장난감이나 선물이 아닌, 단 한 가지 마음을 담아 소원을 적었다. 단순히 물건을 갖고 싶다거나 놀고 싶다는 바람이 아니라, 어린 마음 깊숙이 자리한 그리움과 사랑을 담은 소원이었다.

▲ 이별과 그리움 속에 담긴 어린 마음

경기 동두천시의 한 아동양육시설에서 생활하는 윤도는 생후 6개월 무렵, 친모의 학대로 보호 조치가 이뤄지면서 형 연호(가명)와 함께 그룹홈에 입소했다.

갓난아이였던 윤도를 품에 안고 우유를 먹이며 키워 준 사람은 그룹홈 양육자였던 이옥희(가명) 선생님이었다. 아이에게 이씨는 자연스럽게 ‘엄마’였고, 함께한 시간은 윤도의 마음속에서 단단히 자리 잡았다.

하지만 몇 해 전 그룹홈이 폐쇄되면서 가족 같은 시간은 갑작스러운 이별로 끝났다. 형제는 현재 시설로 옮겨졌고, 이씨는 다른 일을 찾아야 했다. 충분한 작별 인사도, 다시 만날 약속도 없는 이별이었다. 그 뒤로도 윤도의 마음 한편에는 언제 다시 엄마를 볼 수 있을까 하는 그리움이 남았다.

‘산타 소원상점’ 소원편지를 적는 순간, 윤도는 망설임 없이 선택했다. 장난감도, 옷도 아닌, “엄마를 다시 만나게 해 달라”는 소원이었다. 어린아이의 간절한 마음이 담긴 소원은 읽는 사람의 가슴까지 따뜻하게 만들었다.
윤도(가운데)와 형 연호, 이씨가 서로를 따뜻하게 감싸 안아주고 있는 모습. 초록우산 제공

▲ “좋아요”라는 한마디에 담긴 마음

윤도의 소원을 전달받은 이씨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편지를 보고 정말 고마웠어요. 아이들은 잘 몰랐을지 모르지만, 헤어질 때 저는 정말 많이 울었거든요.” 생후 6개월부터 약 4년 동안 함께 공원에서 산책하고, 놀이터에서 놀고, 잠들기 전 이야기를 나누던 아이들을 떠나보내야 했던 마음은 여전히 상처로 남아 있었다.

이씨는 건강 악화와 생계 부담 때문에 아이들이 있는 시설을 직접 찾아가기는 쉽지 않았다. 이씨는 대신 생일, 크리스마스, 어린이날이면 작은 선물을 보내며 “너희를 잊지 않았어”라는 마음을 전해왔다.

이번 윤도의 소원을 통해 그 마음이 다시 연결됐다. “내가 먼저 달려갔어야 했는데…”라는 미안함과 함께 초록우산 ‘산타 소원상점’의 안내를 받고 오랜만에 아이들을 만나러 올 수 있었다.

3년 만에 이뤄진 재회 당일 윤도와 형 연호, 이씨 세 사람은 오랜만에 마주 앉아 어색한 웃음을 나눴다. “엄마 만나니까 어때요?”라는 질문에 윤도는 잠시 머뭇거리다 작은 목소리로 “좋아요”라고 답했다.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한 마음은 표정과 눈빛, 꼭 잡은 손에 담겨 있었다. 형 연호 역시 옆에서 함께했던 추억을 떠올리며 조심스레 이야기를 보탰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세 사람에게 이번 만남은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고 ‘또 보자’는 약속을 나누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윤도의 소원이 만들어 낸, 겨울 한가운데 작은 기적이었다.

▲ 후원자의 마음으로 이뤄진 작은 기적

이번 재회는 안효선 후원자의 따뜻한 나눔으로 가능했다. 안 후원자는 ‘산타 소원상점’ 캠페인에 참여하며 “아이들의 크리스마스 소원을 직접 들어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기부했고, 그 정성은 윤도 형제의 왕복 이동비와 식사비, 작은 선물 비용으로 사용됐다.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의 마음이 아이들의 재회를 가능하게 만든 것이다.

초록우산 경기북부지역본부가 진행하는 ‘산타 소원상점’은 아동들이 각자의 사정과 꿈을 담아 쓴 소원을, 후원자들이 ‘산타’가 되어 하나씩 들어주는 연말 캠페인이다. 어떤 아이는 따뜻한 겨울 점퍼를, 어떤 아이는 악기를, 또 어떤 아이는 윤도처럼 “떨어져 지내는 엄마와의 재회”를 소원으로 썼다.

작은 금액의 후원이라도 한 아이의 인생에서 잊지 못할 장면을 선물할 수 있다. 올해 겨울, 우리도 누군가의 소원을 들어주는 산타가 되어보면 어떨까.

고양=박재구 기자 park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