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식품의약국(FDA) 코로나19 백신과 관련해 사망한 아동이 최소 10명이라는 내부 분석을 근거로 백신 승인 기준을 대폭 강화하기로 했다. 과학계와 전·현직 관계 당국자들은 구체적인 근거가 공개되지 않은 상태에서 백신 정책을 뒤집는 것은 위험하고 무책임한 결정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29일(현지시간) CNN,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FDA 의학·과학 최고책임자이자 백신 부문을 총괄하는 비나이 프라사드 FDA 생물의약품평가센터(CBER)센터장은 최근 직원들에게 이같은 내용이 담긴 내부 이메일을 전송했다.
프라사드 센터장은 이메일을 통해 “FDA의 안전성 자료를 검토한 결과, 코로나19 백신 접종 후 최소 10명의 미국 아동이 사망한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그는 “사망 위험이 극히 낮은 건강한 어린이들이었지만 바이든 행정부의 접종 의무화에 떠밀려 죽음에 이를 수 있는 백신을 맞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망 사례 96건에 대한 초기 분석 결과 10건이 백신 접종과 관계가 있으며 상당수가 심근염과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다만 아동의 나이, 기저질환, 부검 결과 등 인과관계를 뒷받침할 핵심 자료는 공개하지 않았고 어떤 제약사의 백신인지도 명시되지 않았다.
프라사드 센터장은 “많은 백신이 전 세계적으로 수백만 명의 생명을 구했지만 잘못 쓰이면 해를 입힐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의약품과 다르지 않다”며 백신 정책의 전면 재검토를 선언했다.
구체적으로는 연례 독감 백신 체계 개편, 영유아·소아·임산부 접종 확대 전 대규모 임상시험 의무화, 타 백신 동시 접종 제한 검토, 임산부용 백신 승인에 활용되던 기존 연구 결과 전면 무효화 등이다. WSJ는 이런 변화가 향후 미국의 백신 개발·승인 절차를 지연시키고 제약사들의 백신 투자 자체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프라사드는 이번 결정에 대해 “FDA가 처음으로 코로나19 백신이 미국 어린이를 사망하게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중대한 폭로”라고 표현했다. 이어 백신 정책 전면 재검토라는 핵심 원칙에 동의하지 않는 직원은 사직을 고려해야 한다고 압박하기도 했다.
이번 입장 변화는 반(反) 백신 단체 ‘칠드런스 헬스 디펜스(Children’s Health Defense)‘를 설립하고 오랫동안 백신 회의론을 펼쳐온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현 보건복지부(HHS) 장관의 기조와도 맞물려 있다고 CNN은 전했다.
케네디 장관은 취임 이후 mRNA 백신 개발 예산을 대폭 삭감하고, 질병통제예방센터(CDC) 백신 자문위원단을 전원 교체했으며, 자폐증과 백신을 잘못 연결하는 내용을 CDC 홈페이지에 포함시키도록 지시해 논란을 겪은 바 있다.
공중보건 전문가들은 비판적인 반응이다. 필라델피아 어린이병원 감염병 전문가 폴 오핏 박사는 가디언에 “FDA의 주장을 과학자들이 검증할 수 있도록 동료 평가를 거친 의학저널에 먼저 게재했어야 한다”며 “근거를 제시하지 않은 채 이런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을 겁주기만 하는 위험한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코로나 팬데믹 전 기간 FDA 백신 부문을 이끌었던 피터 마크스 전 국장은 뉴욕타임스에 “메일의 정치적 어조에 놀랐다”며 “사례 상당수는 인과관계 판단이 논쟁적일 수 있는 복잡한 경우들”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전문가들도 사망과 백신의 인과관계를 규정하려면 아주 정교한 검증 과정이 필요하며 단순한 사례보고만으로는 결론을 내릴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코로나19 백신이 드물게 심근염 등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 이미 인정돼왔다”며 “그럼에도 심각한 부작용이 매우 드물고 백신이 이익이 위험을 크게 웃돈다는 결론을 일관되게 내렸다”고 주장했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