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장도, 예배도… 인구 절반 20세 미만인 이 대륙

입력 2025-11-30 10:11
청년들이 지난 2월 르완다 키갈리의 한 행사장에서 행사를 진행하는 모습. 아프리카미래학회 제공

아프리카의 정치·경제·종교 지형이 MZ세대를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29일 온·오프라인으로 열린 아프리카미래학회(회장 장훈태) 하반기 학술대회에서 발표자들은 “아프리카의 세대교체는 이미 구조적 변화”라고 입을 모았다. 여러 국제 조사에서 아프리카 대륙의 중위 연령이 19세 안팎으로 나타나는 가운데, 발표자들은 “청년층이 선거와 거리 정치의 핵심 변수로 떠오르면서 한국의 대(對)아프리카 선교·시장·정책 전략도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주제 발표에 나선 장훈태 회장은 “변화를 이해하려면 ‘스마트폰을 든 청년층’의 등장을 먼저 봐야 한다”고 말했다. 장 회장은 최근 정치 운동들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이동하는 배경에 대해 “중저가 스마트폰 확산과 데이터 비용 하락이 겹치면서 청년층이 기존 정당조직을 거치지 않고도 정치 참여의 통로를 확보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장 회장은 르완다를 사례로 들었다. “르완다에서는 1994년 집단학살의 기억이 왜곡되거나 악용되는 일이 반복됐다”며 “20·30세대가 직접 사실 확인 채널을 만들어 유튜브·페이스북·인스타그램에서 허위정보를 검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나 언론이 아니라 청년들이 스스로 역사 해석의 주체로 나서고 있다는 설명이다.

카메룬 청년들이 손으로 브이자를 그리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아프리카미래학회 제공

케냐의 변화도 소개됐다. 장 회장은 “케냐 청년층은 개헌을 둘러싼 논쟁에서 SNS 해시태그 운동을 조직하며 여론 지형을 흔들었다”고 말했다. ‘강요된 대통령제에 반대한다’는 의미의 온라인 운동이 짧은 시간 안에 거리 시위로 이어지며 정치 일정에 실제 영향을 미쳤다는 설명이다.

나이지리아의 ‘#EndSARS’ 시위도 언급됐다. 그는 “경찰 특수기동대(SARS)의 과도한 폭력과 부패 문제를 두고 청년들이 ‘사스를 끝내라(End SARS)’는 온라인 캠페인을 시작했고, 이 운동이 전국 시위로 확산해 정부가 부대를 해체하는 결과까지 나왔다”고 말했다. 장 회장은 이를 “스마트폰 기반 조직화가 실제 정책 변화를 만들어낸 대표적 사례”로 평가했다.

장훈태 회장이 지난 2월 우간다 수도 캄팔라와 남수단 국경 중간 지점에서 촬영한 사진. 아프리카 MZ 세대는 시장과 상업의 중심이다. 아프리카미래학회제공

경제 분야 발표에서는 앙골라 MZ세대의 가치관 변화가 주목됐다. 김계리 한국외대 연구교수는 “앙골라 청년층은 더는 과거 독립투쟁 영웅을 국가 정체성의 중심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그는 그 배경으로 석유 중심 경제 구조, 교육·고용 기회의 불평등, 만연한 부패를 지적하며 “오랜 내전 후 형성된 지배 엘리트 구조가 청년층의 체감 현실과 괴리를 보이는 점이 주요 원인”이라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청년층 내부에서 기존 정치세력의 정당성과 충돌하는 새로운 국가 상상력이 형성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종교 영역에서도 세대 변화는 뚜렷했다. 장 회장은 “아프리카 청년층의 신앙은 전통 스피릿(spirit) 문화와 기독교가 중첩된 환경에서 형성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상 숭배, 치유 의례, 주술적 세계관이 일상적 신앙 감각으로 남아 있고 여기에 오순절·은사주의 계열 교회가 급성장하면서 체험 중심의 신앙 구조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는 분석이다.

장 회장은 “청년층 다수가 실업·주거 불안·부패한 공공 서비스 등 생존 문제를 겪고 있어 ‘지금 여기에 효력이 있는 신앙’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말했다. 설교나 교리보다 치유 집회, 영적 체험, 예언 기도에 반응이 큰 것도 같은 맥락이라는 해석이다. 그는 “강렬한 체험은 공동체 결속을 강화하는 긍정적 요소가 있지만, 신학적 검증 없이 열정만 강조될 경우 번영신학이나 기복주의로 기울 위험도 상존한다”고 말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즉각적 치유’나 ‘특별한 능력’을 강조하는 지도자가 영향력을 얻으면서 교회가 구조적 문제보다 개인적 축복 서사에 치우치는 사례도 나타났다는 분석이다.

발표자들은 이 같은 변화가 “기존의 한국식 접근이 더는 통하기 어렵다는 신호”라고 강조했다. 장 회장은 “과거에는 한국이 선교 모델을 일방적으로 전달했다면, 이제는 현지 청년과 협력해 신학적·실천적 지식을 함께 만들어가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한국 기업의 대아프리카 진출 전략도 청년층이 중시하는 공정성·투명성·디지털 친화성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해영 밀알복지재단 케냐 희망사업본부장은 “현지 청년 지도력을 세우는 것이 향후 정책·선교 협력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프리카미래학회 관계자들이 29일 서울 강남 R플러스치과 채플실에서 단체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아프리카미래학회 제공

손동준 기자 sd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