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는 때리고, 온두라스는 풀어주고…트럼프 마약 정책의 모순

입력 2025-11-30 08:19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7일(현지시간)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저택에서 해외 주둔 미군들과 화상 통화를 하는 모습.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9일(현지시간) 베네수엘라 영공을 비행하지 말라고 경고하며 마약 단속을 명분으로 베네수엘라에 대한 군사작전 감행까지 시사했다. 반면 과거 마약 밀매 혐의로 45년형을 선고받은 전직 온두라스 대통령에 대해서는 사면을 발표하면서 마약 단속 정책의 모순을 드러냈다는 지적이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루스소셜에 “모든 항공사와 조종사, 마약상과 인신매매자들에게 전한다. 부디 베네수엘라의 상공과 주변의 영공 전체를 폐쇄된 것으로 간주하라”고 적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9월부터 미국으로의 마약 밀매를 차단한다는 이유로 베네수엘라 인근 해역에 항공모함 전단을 배치하며 압박 수위를 높여왔다.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에 대한 축출 가능성도 공언하고 있다.

트럼프는 지난 27일 추수감사절에도 전 세계 미군과 화상으로 통화하며 해상뿐 아니라 지상에서도 베네수엘라의 마약 밀매자들을 차단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미국 연방항공청(FAA)도 지난 21일 베네수엘라 주변의 “악화하는 안보 상황과 군사 활동 고조”를 이유로 베네수엘라의 영공을 비행하는 항공사에 주의보를 발령한 바 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 튀르키예 국적 등의 항공사 최소 6곳이 베네수엘라행 항공편을 취소했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성명을 내고 트럼프의 게시물이 유엔이 금지한 “적대적이고 일방적이며 자의적인 행위”라고 비판했다. 이어 “베네수엘라는 자국 영공의 주권을 침해하려는 식민주의적 위협을 규탄한다”며 “이는 베네수엘라 국민에 대한 새롭고 기이하며 불법적이고 부당한 침략 행위”라고 덧붙였다.

트럼프는 지난주 마두로와 전화 통화를 하기도 했다. 다만 두 정상이 조만간 회동할 가능성은 작다는 것이 미국 언론의 대체적 분석이다.

반면 트럼프는 전날엔 미국으로의 마약 밀매에 관여한 죄로 미국에서 징역을 살고 있는 후안 오를란도 에르난데스 온두라스 전 대통령을 사면하겠다고 선언했다. 트럼프는 트루스소셜에 친미 보수 성향의 에르난데스 전 대통령에 대해 “전면적이고 완전한 사면을 부여할 것”이라며 “그는 매우 가혹하고 불공정한 대우를 받아 왔다”고 주장했다.

트럼프가 마약 단속을 목적으로 베네수엘라에 대한 군사 작전을 시사하면서도 마약 범죄로 복역 중인 온두라스 전직 대통령을 사면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평가가 나왔다.

에르난데스 전 대통령은 퇴임 직후인 지난 2022년 2월 체포돼 같은 해 4월 미국에 신병이 인도된 뒤 기소됐다. 미국 검찰은 에르난데스 전 대통령이 과거 국회의원과 대통령 재임 시절 콜롬비아와 베네수엘라에서 코카인을 들여와 미국으로 밀수하는 데 관여한 점을 확인했다. 그는 마약 업자에게서 받은 뇌물을 대선 자금으로 쓰기도 했다. 에르난데스 전 대통령 지난해 6월 뉴욕 맨해튼연방법원으로부터 징역 4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그런데도 트럼프가 에르난데스 전 대통령을 사면한 것은 그가 친미 성향의 보수주의자라는 점이 배경이 된 것으로 해석된다. 트럼프가 온두라스 대선에서 우파 후보인 티토 아스푸라 국민당 대표를 지지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실제로 트럼프는 에르넨다스 전 대통령 사면을 발표하는 글에서 “티토 아스푸라가 온두라스 대통령에 당선되면 미국은 그와 그의 정책, 그리고 온두라스의 위대한 국민을 위해 그가 할 일에 대해 매우 큰 신뢰를 갖고 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적기도 했다.

민주당 소속 팀 케인 상원의원은 “이번 사면 조치는 정부가 마약 밀매에 진정으로 관심을 갖고 있다는 주장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것”이라며 “이는 베네수엘라 작전의 실체가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다”고 비판했다.

워싱턴=임성수 특파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