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당 독재를 무너뜨린 루마니아 혁명의 발상지 티미쇼아라. 이곳 교회들에서는 매주 금요일 북한을 위한 기도가 울려 퍼진다. 한국에서 7700여㎞ 떨어진 동유럽 땅에서 현지 성도들이 자발적으로 금식을 선포하고 한반도의 통일을 염원하는 것이다. 일부 기독교인은 굳게 닫힌 북한 땅을 밟기 위해 평양행 비자를 신청하고 여행을 준비 중이다. 여행객 신분으로라도 평양에 들어가 단절된 주민들을 만나 복음을 전하겠다는 계획이다.
33년째 루마니아에서 사역 중인 정홍기(71) 선교사가 최근 서울 서대문구 한 카페에서 국민일보와 만나 “통일 선교의 문이 닫힌 것처럼 보이지만 동유럽에서는 북한을 위해 기꺼이 짐을 꾸리는 사역자들이 일어나고 있다”며 “이곳의 움직임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루마니아는 단순한 선교지가 아니라 평양의 닫힌 문을 열기 위해 예비 된 오래된 미래이자 베이스캠프”라고 말했다. 정 선교사는 1989년 루마니아 민주화 얼마 후인 1993년부터 AFC선교회 파송으로 현지에 들어가 활동해왔다.
독재의 어둠 걷어낸 루마니아… 북한을 ‘과거의 나’처럼 품어
티미쇼아라를 비롯한 루마니아 교계의 움직임에는 한국 쥬빌리 통일구국기도회의 영향이 컸다. 정 선교사를 통해 방한했던 루마니아인들은 자신들이 겪었던 공산 독재의 어둠을 북한 주민들이 여전히 겪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후 본국으로 돌아가 한국에서 목격한 기도 운동을 벤치마킹했고 이는 자발적인 기도 운동으로 확산됐다.
정 선교사가 루마니아를 제3국을 통한 북한 선교 적임지로 꼽는 이유는 역사적 특수성 때문이다. 루마니아는 과거 김일성을 형님으로 모셨던 독재자 차우셰스쿠의 나라다. 정 선교사는 “차우셰스쿠는 북한 방문 후 주체사상과 독재 시스템에 매료돼 도청과 감시를 일삼는 비밀경찰 세쿠리타테와 식량 배급제, 수령 중심 통치까지 그대로 이식했다”며 “루마니아 사람들은 북한 사람을 만나면 긴 설명 없이도 그 공포와 배고픔을 마치 거울을 보듯 본능적으로 이해한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북한이 개혁·개방될 경우 그 모습은 필연적으로 루마니아를 닮아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1989년 유혈 혁명 이후 루마니아 사회가 겪은 급격한 체제 붕괴와 가치관 혼란은 향후 북한이 마주할 상황의 예고편이라는 것이다. 정 선교사는 “혁명 다음 날 어제까지 공산당 간부였던 사람이 민주 투사 완장을 차고 나타나는 것이 체제 전환국의 현실”이라며 “이 과정을 먼저 겪은 루마니아에 분명한 반면교사가 있다”고 전했다.
공장 노동자에서 옥스퍼드 석사까지… ‘배우는 이방인’으로 산 33년
공장 노동자 출신인 그가 루마니아라는 낯선 땅에 뿌리내리기까지의 여정은 험난했다. 1954년생인 정 선교사는 16세부터 공장 노동자로 일하다 1975년 고향 전북 고창에서 탈곡기에 손이 끼는 사고를 당했다. 수술 후 어머니가 건넨 성경을 읽고 회심하며 신학의 길로 들어섰다.
1983년 스물아홉 늦깎이 신학생이 된 그에게 이근묵 권사가 찾아와 “세계 선교를 하려면 영어를 해야 한다”고 권했다. 이 권사의 도움으로 매일 영어 성경을 암기하던 그는 한국 교회의 부흥 현장을 취재하러 온 네덜란드 국영방송 프로듀서 파이케 타르벨드를 만나며 유럽에 눈을 떴다. 이후 타르벨드를 도와 한경직·조용기 목사 등 당대 교계 지도자들의 인터뷰를 통역하며 시야를 넓혔다. 정 선교사는 “당시 유럽 동역자들에게서 선교는 오지로만 가는 것이 아니라 쇠퇴해가는 기독교의 본산 유럽과 공산권에도 영적 회복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유럽행을 결심했다”라고 회고했다.
1993년 루마니아 땅을 밟은 그는 가르치는 선교사가 아닌 배우는 이방인의 자세를 택했다. 무작정 관공서를 찾아가 줄을 서고 현지인들에게 서류 작성을 부탁하며 도움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병원장과 경찰국장 등 주류 사회 리더들과 교분을 쌓았다. 이를 바탕으로 2004년부터 기독교와 사회 포럼을 주도하며 공산주의 붕괴 후 가치관의 혼란을 겪던 현지 지식인과 정계 인사들에게 민주주의와 기독교적 리더십을 소개하는 가교 역할을 감당했다.
그는 50대 중반 영국 옥스퍼드 선교대학원(OCMS)에서 커뮤니케이션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정 선교사는 “공장 바닥에서 시작해 옥스퍼드 학위까지 이어진 삶의 궤적은 전적인 하나님의 계획이었다”라고 고백했다.
우리에겐 경계 대상이지만 그들에겐 친구… 제3국이 쥔 ‘연결의 열쇠’
정 선교사는 자신의 남은 사명을 연결로 정의했다. 남북 관계 경색으로 직접적인 통일 선교가 막힌 상황에서 제3국을 통해 열리는 새로운 역사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 선교사는 “우리가 직접 갈 수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은 북한과 오래된 우정을 간직한 루마니아와 러시아 친구들을 예비해 두셨다”며 “북한 사람들에게 우리는 여전히 경계의 대상이지만 옛 형제국가였던 이들은 친구로 다가갈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제3국 동역자들 손에 쥐여 주신 이 열쇠를 통해 복음이 흘러들어갈 수 있도록 우리도 함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글·사진=김용현 기자 fa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