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계 사모 펀드(PEF) 운용사 어피티니에퀴티파트너스가 롯데 그룹으로부터 코스피 상장사 롯데렌탈(롯데렌터카)의 경영권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소액 주주 이익 침해 논란을 일으킨 가운데 국내 자산운용사인 VIP자산운용이 어피니티에 “유상 증자(유증) 후 자사주를 매입·소각하라”고 요구했다. VIP운용은 롯데렌탈 지분 5%가량을 보유한 기관 투자자다.
VIP운용은 27일 롯데렌탈 지분 5.2%를 ‘일반 투자’ 목적으로 취득했다고 공시하며 배포한 보도 자료를 통해 “유증으로 확보한 현금을 소액 주주의 지분율 희석을 방지하는 데 써야 한다”면서 “현금 배당 대신 자사주를 매입해 소각하고 자본 잉여금을 활용해 감액 배당을 하라”고 주장했다. VIP운용에 따르면 어피니티의 계획대로 롯데렌탈 유증이 강행될 경우 일반 주주의 지분율은 20%가량 희석된다.
반면 유증 이유로 제시됐던 ‘신사업 인프라 구축’은 거의 끝나 필요 자금이 대폭 줄었다는 것이 VIP운용의 주장이다. 여기에 6700억원에 이르는 자본 잉여금을 이익 잉여금으로 바꿔 감액 배당에 나서면 주가를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VIP운용 관계자는 “롯데렌탈 주가는 올해 들어 이달 26일까지 약 9% 상승하는 데 그쳐 같은 기간 65% 오른 코스피에 비해 한참 뒤처지는 상황”이라면서 “(주가를 끌어올리기 위해) 현행법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적극적인 주주 활동을 하겠다”고 말했다.
VIP운용이 이렇게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는 이유는 롯데렌탈 기업 인수·합병(M&A) 과정에서 경영권을 주고받은 롯데 그룹과 어피니티는 큰 이익을 본 반면 소액 주주는 손해를 봤기 때문이다.
우선 롯데 그룹은 롯데렌탈 M&A 과정에서 경영권 프리미엄을 챙겼다. 호텔롯데와 부산롯데호텔 등 롯데 그룹 계열사가 보유한 롯데렌탈 지분 56.2%를 주당 약 7만7000원, 총 1조6000억원에 어피니티에 매각한다는 사실이 지난 2월 27일 알려졌는데 이는 당시 주식 시장에서 거래되던 주가 2만9000원대(시가 총액 기준 6000억원대) 대비 3배에 육박할 정도로 높은 가격이다. 발행 주식의 ‘50%+1주’를 넘는 경영권 거래라 웃돈이 많이 붙었다. 이 과정에서 나머지 43.8%의 지분을 보유한 소액 주주는 소외됐다.
더 큰 문제는 롯데렌탈 M&A 발표와 함께 내놓은 유증 계획에 있다. VIP운용의 주장처럼 소액 주주의 지분율을 희석해 이들의 이익을 침해하는 구조로 짜였기 때문이다. 롯데렌탈 이사회는 이날 ‘신사업을 위한 인프라 구축에 쓸 시설 자금 1200억원에 회사채 상환 대금 900억원을 더해 2100억원이 필요하다’면서 어피니티 대상 제3자 배정 유증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어피니티가 M&A 당시 시가와 비슷한 주당 2만9000원에 보통주 신주 726만1877주를 받는 구조다.
어피니티는 M&A 당시 시가로 신주를 받는다니 공정한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발행가가 싸냐, 비싸냐를 떠나서 어피니티만 신주를 받아간다는 것이 문제다. 유증이 끝나면 어피니티 지분율은 56.2%에서 63.5%로 높아진다. 소액 주주 지분율은 38.8%에서 32.3%로, 롯데 그룹이 팔지 않고 남겨둔 지분율은 5%에서 4.2%로 각각 낮아진다.
이 유증으로 어피니티는 롯데렌탈 평균 인수가를 주당 6만4000원 수준으로 낮출 수 있게 된다. 무엇보다 지분율이 상승, 롯데 그룹 잔여 지분(4.2%)과 합해 67.7%를 갖게 된다. 소액 주주로서는 롯데렌탈 경영진이 어피니티의 뜻에 따라 정관을 제멋대로 바꾸는 등의 일을 막을 ‘특별 결의 저지선’을 잃게 되는 것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소수 주주도 주주지만 롯데렌탈 M&A 과정에서 경영권 프리미엄은 한 푼도 못 받고 유증에 참여할 권리도 없이 결과적으로 지분율만 줄어들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김진욱 기자 real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