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퉁 명품가방·지갑의 재료를 한데 모은 키트를 판매해 소비자가 직접 짝퉁 제품을 만들 수 있도록 한 일당이 검찰에 넘겨졌다.
지식재산처 상표특별사법경찰은 위조 명품을 만들 수 있는 ‘DIY(직접 만들기) 조립키트’를 유통한 A씨(50·여) 등 3명을 상표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송치했다고 27일 밝혔다.
상표경찰에 따르면 경기도 수원에서 공방을 운영하는 A씨 등 2명은 2021년부터 지난 6월까지 해외에서 수입한 위조 원단과 부자재를 조립 키트로 만들어 판매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2만여명이 가입돼 있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자신들의 조립키트를 판매했다. 커뮤니티 가입 대상은 DIY 제품을 활발하게 이용하는 성인여성으로 제한했다.
판매된 조립키트는 해외 명품 브랜드가 실제로 판매하고 있는 제품 26종을 본따 만들었다. 각 조립키트가 어떤 제품을 모방했는지 명칭을 명확하게 밝히는 대신 ‘요플레백’ 등과 같은 은어로 소통했다고 한다. 공방 내부에는 조립키트로 완성한 제품을 전시해놓고 공방을 찾은 소비자들에게 소개하는 등 짝퉁 상품의 온·오프라인 유통 허브 역할을 했다.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금속부자재 업체 관계자 B씨(42)는 명품 가방 규격에 맞춘 위조 장식품을 A씨의 공방에 유통했다.
이들은 구매자들이 짝퉁 제품을 보다 쉽게 제작할 수 있도록 수십페이지에 달하는 조립 설명서도 제공했다. 설명서에는 봉제 순서, 재단치수 등 상품의 제작과정 전반이 담겨 있었을 뿐 아니라 B씨가 판매하는 위조 장식품을 구매하는 방법도 안내돼 있었다. 수입한 원단이 명품 브랜드가 사용하는 수준의 가죽이 아니어서 품질은 다소 낮았지만 가격은 매우 저렴했다.
지재처는 이들의 범행이 합법적 취미 활동을 가장해 소비자를 위조품 제작 과정으로 유인한 행위라고 설명했다. 소비자가 이들의 조립키트로 만든 제품을 재판매할 경우 위조상품 유통 행위로 처벌받을 수 있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 범죄에 연루될 수 있는 것이다.
상표경찰은 이들 두 업체로부터의 위조 원단과 금형, 금속 부자재 등 총 2만1000여점의 소재를 압수했다. 압수물 가운데 공방에 전시돼 있던 완성품 80여점은 정품가 7억6000만원 상당이었고, 보관 중이던 조립키트 600여점이 완제품으로 제작될 경우 정품가액은 2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품 가격이 최대 4000만원짜리인 가방의 조립키트도 있었다.
신상곤 지재처 지식재산보호협력국장은 “이번 사건은 완제품이 아닌 소비자 제작형 조립키트가 실제로 단속된 첫 사례다. 위조 범죄수법이 갈수록 교묘해지고 진화되고 있다”며 “위조상품을 쉽게 접하고 제작·소비할 우려가 있을 뿐 아니라 불법 거래 확산 및 소비자 인식 왜곡을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립키트는 가격이 저렴하고 온라인을 통해 제작 방법도 공유될 수 있기에 위조상품의 확산을 부추길 우려가 크다”며 “위조상품의 제작 단계부터 유통·판매망까지 철저히 단속하겠다”고 강조했다.
대전=전희진 기자 heej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