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배우 이순재(90)가 가족과 동료, 후배, 제자들의 배웅 속에 27일 영면했다.
영결식과 발인은 이날 오전 서울 송파구 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12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수됐다.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배우 유동근, 최수종, 정준호, 전혜진, 정준하, 정일우, 임수정, 장성규, 이무생 등이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고인이 애정으로 가르쳤던 가천대 연기예술과 학생들도 함께했다. 조문객들은 조용히 인사를 나누거나 서로 어깨를 토닥이며 슬픔을 나눴다.
고인과 MBC 시트콤 ‘지붕뚫고 하이킥’을 함께한 배우 정보석의 사회로 영결식이 시작됐다. 정보석은 복받치는 감정에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선생님은 연극·영화·방송 전반에서 늘 본보기가 돼주신 분”이라며 “항상 제일 앞에서 큰 우산으로 후배들이 마음 놓고 연기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주셨다”고 애도했다.
추도사를 위해 마이크 앞에 선 배우 하지원은 한동안 고개를 숙인 채 입을 떼지 못했다. MBC 드라마 ‘더킹 투하츠’에서 호흡을 맞췄고, 평소 ‘팬클럽 회장’을 자처할 만큼 고인에 대한 애정과 존경이 깊었던 그는 “이 자리에서 선생님을 보내드리는 것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원은 생전 고인에게 ‘연기는 왜 하면 할수록 어려운지’ 물었다가 “인마, 지금도 나도 어렵다”는 답을 들었던 일화를 돌이켰다. 그는 “그 말은 제게 큰 위로이자 평생 간직할 가르침이었다”며 “선생님은 연기 앞에서 누구보다 겸손했고 스스로 질문하기를 멈추지 않은 분이었다”고 회상했다.
동양방송(TBC) 탤런트 후배이자 KBS ‘공주의 남자’에서 함께 연기한 배우 김영철이 추도사를 이어갔다. 그는 “오늘이 드라마 한 장면이라면 얼마나 좋겠나. ‘오케이 컷’ 소리에 선생님이 털고 일어나 ‘다들 수고했다, 오늘 정말 좋았어’라고 말해주실 것 같다”고 슬퍼했다. 앞줄에 앉은 후배 배우들도 그 말에 울음을 터뜨렸다. 김영철은 “선생님은 힘들어 보이는 후배에게 먼저 다가가 등을 토닥여주는 분이었다. 생전에 보여주신 열정과 따뜻함은 앞으로 우리에게 길잡이가 될 것”이라며 고개를 숙였다.
고인의 나이에 맞춰 91송이의 국화가 준비됐다. 유족과 조문객들은 한 사람씩 헌화하고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묵념 시간이 길어지면서 식장을 감싸던 침묵은 더욱 무거워졌고, 곳곳에서 흐느낌이 번졌다. 영결식이 끝난 뒤 유족이 관을 운구하자 조문객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이며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고인은 경기 이천 에덴낙원에서 영원한 안식을 찾았다.
지난해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를 끝으로 무대를 떠난 고인은 노환 등으로 병원 치료를 받다 지난 25일 새벽 세상을 떠났다. 1956년 연극 ‘지평선 너머’로 데뷔한 그는 60년 넘게 연극과 방송을 오가며 한국 대중문화 발전에 이바지했다.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1991), 사극 ‘허준’(1999) 등 수많은 작품에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시트콤 ‘하이킥’ 시리즈와 예능 ‘꽃보다 할배’를 통해선 한층 친숙한 모습으로 사랑받았다. 1992년 제14대 총선에서 서울 중랑갑에 당선돼 국회의원으로도 활동했다.
김승연 기자 ki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