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이렇게 많이 풀고… 고환율이 ‘서학 개미 탓’이라고요?

입력 2025-11-26 19:03
로이터 연합뉴스

시중에 풀려 있는 돈이 최근 3년 9개월간 약 22%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정부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에도 확장 재정 기조에 브레이크를 밟지 않은 결과다. 반면 이 기간 미국 달러 통화량의 누적 증가율은 3%에도 못 미친다. 양국의 이런 통화량 차이가 최근 원·달러 환율이 1400원대 후반에서 고착화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26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 대비 6.8원 하락한 1465.6원에 주간 거래를 마쳤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오전에 기자 간담회를 열고 외환시장 안정 의지를 밝혔지만 장 초반에 비해 낙폭이 줄었다. 올해 들어 이달 25일까지 연평균 환율은 1417원이다. 국제통화기금(IMF)에서 구제금융을 받은 직후인 1998년의 평균 1398.88원보다 18.12원이나 높다.

환율 고공 행진의 원인으로 ‘서학 개미’ 등의 해외주식 투자 급증이 거론되지만 이 요인만으로는 원화 가치의 하락을 설명하기 어렵다. 이달 3~21일 미국 달러 대비 주요국 통화 가치 변동률을 보면 원화는 3.29% 하락해 비교 대상 통화 9개 중 낙폭이 가장 컸다. 이 기간 일본 엔은 2.11%, 대만 달러는 1.87% 하락하는 데 그쳤다.

전문가들은 원화가 상대적으로 많이 풀린 점에 주목한다. 현금(M1)에 현금과 다름없는 저축 예금 등을 더한 광의 통화(M2) 추이를 보면 한국은 2022년 1월 3639조4598억원에서 2025년 9월 4447조9604억원으로 늘었다. 3년 9개월 누적 증가율이 22.2%에 이른다. 이 기간 미국은 21조5873억 달러(약 3경1528조원)에서 22조2125억 달러로 2.9% 증가했다.

2021년을 끝으로 정부 지출을 줄이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맨 미국과 달리 한국 정부가 확장 재정을 이어간 결과다. 정부는 2022년 전년 대비 8% 이상 증가한 본예산을 편성했다. 같은 해에는 2차례의 추가경정예산(추경)이 더해져 80조원에 육박하는 돈이 더 풀렸다.

2023년에는 건전 재정을 표방하며 본예산 증가율을 낮췄지만 디딤돌·버팀목 등 정책대출을 50조원 가까이, 특례 보금자리론을 40조원 이상 풀었다. 정책대출은 지난해에도 50조원 이상 실행됐다. 올해는 소비 쿠폰 지급 등을 위해 2차례의 추경을 편성, 약 46조원이 더해졌다. 모자라는 돈은 국채를 발행해 메웠다. ‘마이너스 통장’ 개념인 한국은행 일시 차입금도 끌어다 썼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제학 이론을 가져오지 않더라도 직관적으로 볼 때 특정 통화의 M2가 증가하면 가치는 하락한다”면서 “양국의 통화량 차이가 원·달러 환율을 밀어 올렸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진욱 기자 real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