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타계한 배우 이순재는 1992년 당시 여당인 민주자유당 후보로 총선에 출마해 14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다.
‘국회의원 이순재’는 4년의 의정활동 기간 전부를 국회 문화공보위원회 위원으로 지내며 문화예술 예산 확충, 창작자를 위한 저작권법 개정, 군사독재 이데올로기를 벗어난 공연윤리심의 필요성 등 문화예술계 전반의 저변 확대를 위해 애썼다.
이순재가 강변했던 것 중 독특한 것은 당시 시대정신 격이던 ‘세계화’ 추세에 맞는 한국 문화예술 발전 필요성이었다. 이순재는 특히 한국인에겐 역량적으로도 지정학적으로도 훌륭한 토양이 마련돼 있음에도 노벨문학상이 배출되지 않은 점을 국회에서 자주 지적했다.
이 같은 생각은 당시 문화공보위 회의 발언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우리가 지금도 분단을 경험하고 있는 우리 민족으로서는 오히려 노벨문학상을 수상할 수 있는 지정학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는 것도 우리가 아니겠는가? 다만 우리의 문학이나 사상이 해외에 충실하게 소개가 안 된 데서 오는 그런 문화적 열등지역으로써 해외에 이해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입장에서 이 문제가 더 보강되어야 되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이 듭니다.”(1993. 11. 11. 문화체육공보위원회)
“우리 문학뿐만 아니라 한국고유의 사상도 우리가 기회있을 때마다 예산이 허락하는대로 우리 선각자들의 사상이라든지 이것이 사실 정확하게 그리고 충실하게 해외에 소개가 되어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해외에 나가 보게 되면 우리 문화원이나 공보관에 비치되어 있는 우리의 자료나 우리의 번역서적을 보았을 때 참 그 빈곤감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는데…”(1993. 11. 11. 문화체육공보위원회)
“지금 한국문학이 노벨문학상과 같은 권위적인 상을 받지 못하고 있는 요인이 우리 문학성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까 아니면 우리 문학속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까?”(1995. 7. 13. 문화체육공보위원회)
“해외공관에 나가서 우리 외교 공관원들의 얘기를 들어봐도 지금 한국문학과 사상의 해외소개가 극히 미흡하다. 또 번역에 참여하고 있는 교수나 학자들의 수준이 동양 3국에 비해서 한국학이 제일 뒤떨어져 있다 하는 개념으로 인식되어 있습니다.” “이 부분이 보완되어서 권위 있는 해외의 석학들이 한국문학이나 한국사상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또 우리 문학이나 사상을 번역하는 사업들이 병행되어서 추진되어야 되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1995. 7. 13. 문화체육공보위원회)
이런 지적이 있은 지 30여년 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들려왔다.
이순재는 이와 더불어 김영삼정부가 1993년 당시 팝스타 마이클 잭슨의 공연을 불허했던 것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당시 정부는 ‘주최측 안전관리 문제’ ‘새로운 사회질서를 확립하는 사회적 환경’ 등을 이유로 들었는데, 이순재는 세계화 추세에 맞지 않는 자신감 없는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마이클잭슨 하게 되면 세계적으로 최고의 가수라고 할 수 있고 연예인으로서 자타가 인정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과거의 뉴키즈온더블록인가 왔을 때처럼 과거의 공연 형태에서 오는 문제점 때문에 이러한 정상의 예능인을 우리가 과감하게 개방해서 보지 못한다는 것도 공연예술에 대한 폐쇄적인 한 단면을 보이는 것이 아닌가? 오히려 행정력이나 치안적으로 메꾸어 나갈 수 있는 분야를 그것이 귀찮고 또 거기에서 오는 후유증에 대한 자신이 없어가지고 그런 측면에서 쉽게 거부해 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1993. 10. 7. 독립기념관, 공연윤리위원회에 대한 국정감사)
“시중에는 찬반 양론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신문에도 보니까 아주 잘했다고 칭찬하는 분들도 있고 한데 그러나 앞으로 예술의 자율과 개방이라는 대원칙을 전제로 했을 때 국내뿐만 아니라 외국 것도 예술적인 문화적인 측면 외에 다른 요인 때문에 통제되고 제어된다는 방법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는데 개방하지 못한다는 분명한 이유를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1993. 10. 7. 독립기념관, 공연윤리위원회에 대한 국정감사)
마이클 잭슨은 이후 1996년 10월 한국을 방문해 서울 잠실올림픽 주경기장에서 공연했다.
이순재의 측근은 26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고인은 ‘우리 대중 문화가 세계적으로 뻗어나갈 수 있을 만큼 훌륭하다’는 말을 자주 했다”면서 “특히 ‘해외로 진출할 수 있는 우수한 학생들이 많다며 후배들을 물심양면으로 독려했다”고 회상했다.
서울 송파구 아산병원에 마련된 이순재 빈소에는 연극계·연예계 인사들의 조문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27일 영결식과 발인이 이뤄진다.
구정하 기자 g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