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카이로 근교 기자 지역에 이집트 대박물관(GEM, Grand Egyptian Museum)이 지난 11월 1일 공식 개장했다. 개장을 전후해 대박물관을 소개하는 수많은 찬사가 넘쳐났다. 연면적 49만㎡, 축구장 70개 규모이며, ‘전부 돌아보는 데 70일 걸린다’는 얘기도 알려졌다. 대박물관은 1992년 건립이 구상되고 2005년 공사가 시작되었다. 기획 시점으로부터 33년, 공사 시작 시점으로부터 20년 만에 완공됐다. 투입된 비용만도 10억 달러(약 1조4400억원)에서 12억 달러에 달한다. 특히 이 공사 비용의 80%인 8억 달러를 일본국제협력기구(JICA)가 제공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일본 정부는 이집트는 물론이고 요르단 등 중동 곳곳의 문화 사업에 90년대부터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이집트학은 물론 아랍 지역 문화 연구에 대한 일본 정부의 노력은 부러움을 자아낸다. 필자는 지난 2월과 10월 대박물관 공식 오픈 전 방문해 둘러볼 기회를 가졌다.
성경 독자의 입체적 이해가 필요한 이유
성경 독자나 교사 상당수는 이집트에 대한 입체적인 이해가 없는 가운데 창세기나 출애굽 이야기, 레위기 등을 다루고 있다. 이집트의 문화와 역사적 맥락이 빠진 출애굽 공부는 자연스럽지 않지만 이것이 한국교회의 현실이기도 하다. 더욱이 성지순례를 목적으로 이집트를 찾는 한국교회 단체나 기독교 성지순례 참여자들은 진지하게 이집트 문명 속에서 성경을 읽으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는 것 같다. 그저 시나이반도의 시내산에 올라 해돋이를 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안타깝게도 한국에서 고대 이집트 문명전이 개최되어도 교회가 단체로 관람을 하거나 그 내용을 활용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고대 이집트 문명에 관심이 많은 필자에게는 대박물관의 여러 가지 현실(또는 상황)이 아쉽게 다가온다. 홈페이지(gem.eg)를 봐도 내용이 부실하다. 아랍어와 영어로만 아주 기초적인 내용이 소개되고 있을 뿐이다. 아직 베타 버전이라는 점 자체가 아쉽다. 게다가 영국의 대영박물관이나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 등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기본적인 형식만 갖추고 있을 뿐이다.
대박물관은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하지만 관심 있는 이들(연구자)을 돕는 것에는 아직 소홀해 보인다. 유물을 시대별, 주제별로 이해하도록 돕는 안내판 등이 부족하며, 방향 안내도 제대로 제공하지 않고 있다. 5만 점인지 10만 점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 전시물이 전시대에 무리 지어 가득 담겨 있는 것 같다. 전문 가이드도 많지 않으며 전시물 도록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 구경거리는 많지만 단순히 눈에 띄는 것을 사진에 담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더 깊이 공부하려는 이들에게는 친절하지 않은 상황이다.
이집트 대박물관에서 창세기와 출애굽기 읽기
이 같은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성경의 땅을 찾아온 독자라면 이 대박물관을 성경적 눈으로 읽어낼 수 있다. 이제 발걸음을 돌려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 보자. 고대 이집트는 구약성경 이해에 큰 유익을 안겨준다. 창세기 37장부터 출애굽기 17장에 담긴 이야기의 무대는 고대 이집트의 중왕국과 신왕국 시대에 걸쳐 펼쳐진다. 이집트의 문화나 종교, 군사, 국제적 영향력은 고대 가나안 지역과 이스라엘 및 팔레스타인 지역에 강하게 자리 잡았으며, 사사시대는 물론 왕정시대 역사에서도 그 파급력을 발견할 수 있다.1. 람세스 석상과 오벨리스크, 파라오의 권능
대박물관 마당에 자리 잡은 높이 15.5m 화강암 재질의 오벨리스크는 성경에서 애굽 땅 벧세메스의 ‘주상(柱像)’(렘 43:13)으로 기록되어 있다. 주상은 그냥 돌기둥이 아니라 태양신 라(Ra)를 칭송하는 오벨리스크를 뜻한다. 그랜드 홀에 들어서면 11m 크기, 무게가 83t이나 되는 람세스 2세의 거대한 석상이 관람객의 눈길을 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왕관에 새겨진 독수리와 코브라 형상이다. 이 둘은 파라오의 수호신이자 상징이었다.
2. 대계단, 뱀과 신들의 형상
대계단(Grand Stairs)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다양한 시대의 파라오 석상과 신들의 형상이 뒤섞여 있다. 다시 파라오의 왕관에 장식된 독수리와 코브라의 형상에 주목해야 한다. 파라오를 떠올리게 하는 그림 언어 중 하나는 ‘뱀’이었다. 하나님이 파라오에게 가는 것을 거부하는 모세 앞에서 그의 지팡이를 뱀이 되게 하고 다시 지팡이가 되게 한 이야기(출 4:2~4)는 강력한 ‘그림 언어’였다.
신들의 석상 가운데 아몬 라의 형상이나 하토르 여신의 모습을 찾아보는 ‘보물찾기’를 시도할 수 있다. 하토르 여신은 붉은 털을 가진 암소 여신이다. 이 계단 길을 따라 60여개 정도 되는 돌 조각상을 관찰하며, 파라오와 신의 어우러짐을 묵상할 수 있다. 대계단의 전시물과 주전시실 본관의 전시물에서 조각상과 부조에 새겨진 수많은 신의 형상을 살펴보자. 십계명에 나오는 신들의 형상을 만들지 말라는 계명(출 20:3~5)을 떠올려 보아야 한다.
3. 투탕카멘 전시실과 배 박물관, 발등상과 압제
수많은 전시물 가운데 단연 주목할 곳은 7번 홀 옆에 구별된 공간에 자리한 투탕카멘(BC 1332~1323) 유물 전시실이다. 이곳의 황금빛 조각상과 장신구는 매력적이다. 이 전시물 가운데 파라오의 보좌 앞에 놓여진 발받침대(성경에서는 ‘발등상’으로 기록)에 주목해야 한다. 그곳에는 이집트의 적대 국가들을 인종적 특성에 따라 인물로 새겨 놓았으며, 두 손이 결박된 모습으로 놓여 있다. “네 원수들을 네 발등상 삼기까지”(시 110:1)라는 표현이 어떤 느낌인지 잠시 묵상할 수 있다.
이러한 정복과 지배의 이미지는 파라오의 오른손에서도 발견된다. 발걸음을 돌려 주 전시실의 벽화나 부조물에 새겨진 파라오의 높이 올려진 오른손을 확인할 수 있다. 성경에 등장하는 ‘오른손’ ‘강한 오른팔’ 등의 묘사는 정복과 지배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주 전시실 건물을 나와 건너편 건물로 들어서면 배(船) 전시실로 들어선다. 이집트 최대의 피라미드를 만든 쿠푸왕 시대의 선박으로 길이가 42.22m나 되는 목선이 전시되어 있다. 이 배는 못을 사용하지 않고 만들어진 것이다.
4. 일상과 종교, 등잔, 옷차림, 신의 형상
다시 12개의 전시 홀에서 보물찾기를 할 수 있다.
주화 : 10홀 등에서 고대 그리스 로마의 은화를 비롯한 주화를 찾아보고, 예수 시대에 성전세 납부용으로 사용된 세겔과 가이사 아구스도(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및 티베리우스 황제의 은화 찾기를 시도할 수 있다.
기름 등잔 : 여러 종류의 기름 등잔을 보고 시대별 특징을 찾아볼 수 있다. 구약과 신약 성경에서 등불은 바로 이 등잔불을 뜻한다. 등잔불이 심지 주변만 밝히고 세상 전체가 밝아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떠올려, 빛의 사명을 묵상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등잔 유물 가운데 3000~4000년 전 등잔을 찾아볼 수 없다.
고대 이집트 중왕국-신왕국 시대에는 성경이나 이웃 근동 문명에서 흔히 발견되는 주둥이가 달린 토기 등잔 형태의 유물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는 이집트인들이 그들만의 독자적인 조명 방식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주로 단순한 돌이나 토기의 개방형 접시(Open Bowl)에 기름과 심지를 띄워 조명으로 활용했다. 이는 일반 식기와 구별이 어려워 유물 분류 시 등잔으로 인식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옷차림과 할례 : 고대 이집트인의 옷차림에서 보이는 공통점을 찾아보아야 한다. 남자들이 입던 치마(쉔티, Schenti)의 유형도 정리해 볼 수 있다. 이런 치마의 특성을 이해하면 요셉이 보디베라(보디발)의 아내에게 옷을 잡혀 도망친 사건 속의 옷에 대한 이해를 더 입체적으로 할 수 있다. 벌거벗은 모습의 남자 조각상에서 고대 이집트 남자의 할례 전통의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다.
남과 여 : 남녀가 함께 등장하며 주로 여자가 남자의 왼쪽에 자리한 고대 석상을 보면 남자는 정적인 자세로 묘사되는 반면, 여자는 남자의 허리나 어깨에 손을 얹는 등 오히려 능동적인 모습을 보인다. 남자의 오른손에 쥐어진 물체가 가장의 권위와 권세를 상징한다 하더라도 여성의 존재감은 결코 작지 않다.
이러한 문화적 배경을 감안할 때 ‘출애굽 광야 공동체’의 여성을 단순히 수동적이거나 남성에 종속된 존재로 풀이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오히려 낡은 관습을 뒤로하고 떠난 광야의 공동체는 남녀 관계에 있어서 이집트와 비슷하거나 한 걸음 더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을까. 출애굽 여정의 대열에서 미리암이 앞장서는 장면(출 15:20 참고)이나 슬로브핫의 딸들이 상속권을 행사하는 장면(민 27장 참고) 등은 눈길을 끈다.
눈동자와 독수리 날개 : 전시실에서 다양한 관과 미라의 풍습을 찾아볼 수 있다. 야곱(창 50:2~3)과 요셉(50:26)도 미라로 만들어졌는데, 미라 전시물에서 눈여겨볼 것이 있다. 가장 바깥쪽 관인 석관이든 외관이든 미라를 담고 있던 그 관의 측면에는 두 개의 눈동자가 새겨져 있다. 그리고 미라를 직접 감싸고 있는 금이나 은, 나무로 된 관에는 날개를 펴고 있는 이시스 여신 또는 수호신이 그려져 있다. 고대 이집트에서 죽은 자의 영생을 지켜주는 신의 보호를 이렇게 시각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이러한 문화에 익숙했던 출애굽 세대와 이집트 문화권의 영향을 받은 다윗 왕국 시절의 백성은, 하나님께서 ‘나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감추신다’(시 17:8)는 말씀을 당대의 시각적 은유를 통해 더욱 생생하게 이해할 수 있다.
재와 화관 : 다양한 벽화 조각과 비석에서 고깔모자 같은 머리 장식을 한 모습과 머리에 재를 뒤집어쓰는 모습을 통해 ‘재 대신 화관을, 근심 대신 기쁨을’이라는 성경 구절(사 61:3)을 묵상할 수 있다.
박물관에서 성경 속 이집트, 이집트 속 성경을 읽기 위해 보물찾기하듯 둘러봤다. 이처럼 박물관은 이집트를 무대로 전개되는 성경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아주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박물관 전시물 속에서 성경적 의미를 발견하는 것은 방문자가 누릴 수 있는 귀한 유익 중 하나이다. 창세기를 비롯한 모세오경에는 우리의 생각보다 이집트의 자취와 지문이 강하게 자리하고 있다. 예를 들어 바로의 궁정 문화나 이스라엘의 노예 생활 배경 등이 이집트의 영향을 짙게 반영한다. 고대 이집트를 알수록 이집트 역사와 유물에 아로새겨진 성경의 자취를 더 명확히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집트와 대피라미드 방문자들이 고대 문명을 넘어 성경적 통찰을 얻는 귀한 유익을 누리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