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치앙마이 도심의 12평(40㎡) 남짓한 작은 카페 ‘패스(Path)’. 아침이면 이곳에 따뜻한 빵 냄새가 퍼진다. 카페에서 판매되는 베이커리는 모두 한슬기(39) 선교사가 자택에서 가르친 태국 소수민족 청년들이 만드는 것들이다. 남편 홍명직(44) 선교사와 현지 청년들은 카페를 운영하며 손님을 맞는다. 최근 국민일보와 화상 인터뷰로 만난 한 선교사는 “하나님이 가라고 하시면 어디든, 무엇을 하든 괜찮다는 기도로 걸음을 내디뎠고, 그렇게 태국에서 10년째 사역하고 있다”며 “하나님은 미리 답을 보여주시는 분이 아니라, 한 걸음 뗄 때마다 길을 만들어 주시는 분”이라고 고백했다.
부르심의 시작 “한 영혼을 위해”
선교의 불씨는 2008년 중국 유학 시절 지펴졌다. 한인교회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당시 남편은 예배 공간이 없는 선교사들을 돕기 위해 바리스타 일을 배우고 있었고, 두 사람은 자연스레 ‘카페 사역’의 비전을 품었다. 결혼 후 한국에 머무는 동안 한 선교사는 제과제빵을 배우며 준비했지만 첫 아이 임신 뒤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다.
“일을 하고 싶다는 열망이 컸던 때에 하나님이 제게 ‘왜 일하고 싶으냐’고 물으셨어요. ‘한 영혼을 위해서’라고 답했을 때 하나님은 ‘그 한 영혼이 바로 네 앞의 아이’라고 하셨어요.” 그는 이때 “육아도 하나님 나라의 사역”임을 깊이 깨달았다고 했다.
이후 준비했던 중국 선교가 무산됐을 때도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집까지 정리하고 비행기 표도 끊은 상황이었는데 모든 문이 닫혔어요. 그런데 그 일이 오히려 ‘하나님이 보내시면 어디든 괜찮다’는 확신을 더 굳게 했습니다.” 부부는 2015년 태국 치앙마이로 선교훈련을 떠났고, 그 땅을 선교지로 삼아 GMP(한국개척선교회) 파송을 받았다.
치앙마이에서 열린 ‘길’
카페 개설은 오래 품은 꿈이었지만 처음부터 계획된 일은 아니었다. 우연히 들른 카페에서 인연이 시작됐고, 남편이 현지 사장의 제안으로 디저트 카페 오픈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한 선교사는 매일 베이킹을, 디자인 전공인 남편은 인테리어를 맡았다. 한국 감성을 좋아하는 태국 청년들이 자연스레 모여들었다.
그러던 중 비자 문제로 예기치 않은 경찰 조사와 카페 폐업을 겪었다. 도움을 주던 현지인이 등을 돌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때 또 다른 문이 열렸다. 남편의 인테리어 실력을 눈여겨본 현지 카페 사장이 정식 디자이너 계약을 제안한 것이다. 이 일로 취업비자를 받았고, 현지 네트워크도 넓어졌다.
이후 집을 짓고 그 공간에서 베이킹 클래스를 열어 플리마켓을 시작했고, 입소문이 퍼지면서 2019년 지금의 카페 ‘패스(Path)’가 문을 열었다. 카페 이름은 ‘원래 길이 아니었지만 사람들이 자주 다니며 생긴 길’이라는 의미다. “우리 인생도 하나님이 걸어가게 하시며 길이 만들어지는 것처럼요. 손님들도 하나님 안에서 각자의 길을 찾기를 바랐어요.”
하지만 곧 코로나가 터졌고, 둘째 아이가 11년 만에 찾아오면서 부부는 잠시 한국에서 안식년을 보냈다. 다시 치앙마이로 돌아온 뒤에는 태국 소수민족 카렌족 선교사와 연결돼, 카렌족 청년들에게 베이킹을 가르치고 고용해 자립을 돕는 사역이 본격화됐다.
선교지에서 배운 관계의 언어
선교지의 한인 ‘선교사 사회’에 적응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한 선교사는 “선교사들 사이에 묘한 경쟁과 긴장이 있었다”며 “‘왜 나에게 알리지 않고 사역을 추진하느냐’는 연락을 받기도 했다. 목회자 출신이 대부분인 현지 선교 사회에서 평신도 선교사로 외로울 때도 있었다”고 했다. 선교비 후원도 넉넉하지 않았다. “한 달을 마치면 2~3만 원 남고 끝날 때도 있었지만 굶지는 않았어요. 하나님이 필요하면 채우시고, 아니면 멈추게 하신다는 걸 배운 시기였어요.”
한 선교사에게 카페는 ‘사업’이 아니라 ‘사람을 만나는 자리’다. 치앙마이는 선교사 수는 많지만 복음화율은 1%도 되지 않는다. “태국 분들은 속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아요. 관계가 깊어지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려요. 그래서 우리의 사역 방식은 ‘전도 먼저’가 아니라 ‘친구 먼저’예요.”
함께 밥을 먹고,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고,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 날 조용히 마음을 열고 상담을 청해오기도 한다. 절에 가서 “돈 많이 벌게 해달라”고 기도하던 친구가 “우리는 그런 기도를 하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던 이야기, 판사를 꿈꾸던 청년에게 “그럼 너는 죄가 없니?”라는 질문을 던지며 처음 복음을 나눈 순간도 들려줬다.
“복음은 결국 관계 속에서 전해지는 것 같아요. 의무감보다 ‘좋은 친구로 남는 것’에 집중하면 사랑이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그 사랑이 마음을 움직입니다.”
여성 선교사의 자기 돌봄
한 선교사는 선교가 ‘누군가를 돕는 일’이지만 “가장 기본은 하나님과의 관계 정립”이라 강조했다. “하나님과 긴밀하게 소통하고 있는지 늘 점검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나와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이 세 관계 안에 사랑이 흐르고 있는지를 살피는 것이 중요해요.”
특히 그는 “선교지에서 여성 선교사들이 스트레스와 과로로 건강을 잃는 모습을 많이 본다”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무엇을 얼마나 잘하느냐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지키며 스스로를 돌보는 일이 우선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있는 자리를 다르게 보지 않으세요. 어디에 있든, 어떤 일을 하든,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 삶의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결국 하나님이 일하고 계심을 믿었으면 좋겠어요.”
김수연 기자 pro111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