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0건 이상 적발되는 ‘일감 몰아주기’, 왜 ‘솜방망이’ 처벌로 끝날까

입력 2025-11-25 17:12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이 21일 정부세종청사 공정위 기자실에서 출입기자단 간담회를 열고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이 기업의 ‘일감 몰아주기’ 제재를 강화하겠다고 나섰지만 실효성에는 의문 부호가 찍힌다. 최근 5년 동안 관련 사건이 매년 두 자릿수로 꾸준히 접수될 만큼 총수 일가의 사익 편취 구조가 반복되고 있는데, 정작 법정에서는 공정위 제재가 잇따라 축소되고 있어서다. 대표 사례인 호반건설 사건에서도 공정위가 부과한 과징금의 절반 이상이 법원에서 취소됐다. 규제 강화 의지와 실제 집행력 사이의 간극을 메우기 위한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25일 공정위 통계 연보에서 최근 5년간 위반유형별 사건접수 현황을 보면, ‘일감 몰아주기’로 분류되는 부당지원 사건 접수 건수는 2020년 27건, 2021년 21건, 2022년 18건, 2023년 21건, 2024년 12건(10월 기준)으로 집계됐다. 연평균 10~20건 선을 유지하며 사건 감소 폭은 제한적이었다.

오히려 총수일가 지분이 높은 비상장사 중심으로 내부거래가 재편되거나, 공공·민간공사 하도급 영역에서 더 은밀하게 구조가 굳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공정위 관계자는 “전반적으로 내부거래 비중이 완화되지 않았고, 대기업집단 집중도 역시 개선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규제 강화 필요성이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이는 주 위원장이 꼽은 공정위의 중점 과제이기도 하다. 주 위원장은 지난 21일 취임 첫 기자간담회에서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을 막론하고 총수 일가의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감 몰아주기’ 등 부당한 지배력 확대 행위를 보다 강력히 제재하겠다”며 제재 강화 의지를 재차 밝혔다. 이를 위해 공시 자료 관리·분석 체계 강화, 생활 밀접 업종(식품·의료·금융 분야)의 내부거래 집중 감시, 부실채권·투자거래에 대한 모니터링 고도화 등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이같은 제재가 실효성이 있을지는 미지수다. 최근 ‘일감 몰아주기’ 대표 사례인 호반건설 사건에선 공정위가 본래 제시한 액수에서 절반 이상이 깎인 243억원의 과징금이 확정됐다. 지난 20일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호반건설이 공정위를 상대로 낸 시정명령 및 과징금 납부명령 취소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한 원심판결을 확정하며 “과징금 608억원 중 365억원을 취소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현행 공정거래법 체계에선 공정위가 유사 사건을 제재할 때마다 비슷한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사익편취·부당지원 판단 기준 요건이 모호하다는 점이 문제로 꼽힌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호반건설 사례는 현재 법체계로는 공정위 제재가 법정에서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있고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걸 보여줬다”며 “불공정거래 위법성 판단에서 핵심이 되는 공정거래 저해성·정상가격 개념이 모호하다 보니 법원이 축소 판단을 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공정위의 조사 권한이 임의규정에 머물러 있다는 점도 근본적 한계로 지적된다. 기업이 제출하는 자료에 의존해 조사가 이뤄지는 탓에 기업의 사전 자료 정리나 은닉에 따른 증거 부족 문제가 반복된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공정위에 준사법적 조사 권한을 부여해야 실질적인 사건 발굴과 법정 승소율이 높아질 것”이라고 짚었다.

세종=이누리 기자 nur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