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 삼도동 남초등학교가 지난 18일 3학기를 마치고 짧은 방학에 들어갔다. 4학기 개학은 12월 1일로, 주말을 포함해 총 12일간의 휴식이 주어진다.
남초는 지난해부터 4학기제를 운영하고 있다. 제주특별법에 따라 교육과정을 자율적으로 편성할 수 있는 자율학교로 지정되면서 영어 특화 교육과 함께 새로운 학기제를 도입했다. 맞벌이 가정의 방학 중 돌봄 부담을 덜고, 학생들의 학업 결손을 보완하기 위한 취지다.
한때 전교생이 3000명에 달했지만 원도심 인구 감소로 신입생이 10명까지 줄자, 학교는 교육 수요자들이 원하는 교육 방향을 고민했다.
현재 남초는 방학 기간에도 학년별 오전 수업과 오후 돌봄·방과후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점심 도시락까지 제공한다.
오전 시간에는 1~2학년은 줄넘기·영어·미술, 3~6학년은 영어·독서논술을 배운다.
이 같은 방식으로 네 번의 방학이 촘촘히 채워진다. 방학이지만 학교 문을 닫거나 최소한으로 열어 놓는 보통의 초등학교와는 다른 방학인 셈이다.
짧은 방학은 학습 격차를 줄이는 데도 효과적이라는 평가다. 학교 관계자는 “학기 중 놓친 과목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가 방학인데, 학기가 길지 않아 아이들이 체력적 부담이 적다”고 설명했다.
남초는 영어 특화 교육에도 힘을 쏟고 있다. 1~2학년은 국어를 제외한 모든 교과와 방과후 프로그램을 영어로 진행한다. 원어민 교사와 한국인 교사가 함께 수업하며, 영어 설명 범위는 사전 협의를 통해 결정한다.
주당 17차시의 원어민 협력수업은 현재 1~2학년에서 내년에는 3학년까지 확대된다. 대부분 영어를 모르는 상태로 입학하지만, 반복되는 표현을 통해 자연스럽게 익숙해진다. 이 같은 교육과정은 학부모들의 호응을 얻어 2023년 10명이던 신입생 수가 올해 39명으로 크게 늘었다.
제주도교육청이 일정 규모 이상 학교에서는 주소지와 관계없이 원도심 학교나 제주형 자율학교로 전입학을 허용하면서 도 각지에서 전학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남초 관계자는 “오늘도 3명이 전학을 왔다”며 “고민해서 만든 교육과정에 만족도가 매우 높아 기쁘다”고 말했다.
제주 교육의 강점, 자율학교
제주남초가 이처럼 특색있는 과정으로 활로를 모색할 수 있었던 것은 제주지역 학교에 부여된 특례 덕분이다.
제주 자율학교는 교육부 지침이나 다른 일반 법령에 따라 운영되는 타 지역과 달리, 제주특별법에 따라 더 큰 자율성을 보장받는다.
교육감은 교원 배치 기준을 초중등교육법과 달리 정할 수 있고, 초·중·고 수업연한도 변경할 수 있다. 입학전형과 전학 절차를 따로 정할 수 있다. 교장·교감 자격이 없는 사람도 임용할 수 있다.
학교장의 재량도 크다. 국어·사회·도덕을 제외한 교과(군)은 기준 시수의 절반 범위 내에서 조정할 수 있고, 학년도나 학기제 역시 학교장이 달리 정할 수 있다.
현재 제주에는 초등학교 69곳, 중학교 18곳, 고등학교 6곳 등 총 93곳이 자율학교로 지정돼 있다. 남초와 같은 글로벌역량학교를 비롯해 놀이학교, 마을 생태학교, 디지털학교, 문예체학교, 인성학교, 발명학교 등 15가지 유형으로 운영되고 있다.
전국구 학교로 떠오른 ‘표선고’
제주형 자율학교의 대표적인 형태가 최근 주목받고 있는 IB학교다. IB학교는 국제공인 교육프로그램인 IB(International Baccalaureate)를 도입해 운영 중이거나, IB본부로부터 ‘IB World School’ 인증을 받은 학교를 말한다.
대구에서 처음 도입한 뒤, 2021년 제주에서도 IB교육이 시작됐다. 현재 장전초 등 11개 초교와 애월중 등 5개 중학교가 IB학교로 운영 중이며, 표선고등학교가 고등과정(DP)을 운영하고 있다.
제주도교육청은 획일적·암기식 평가 방식을 바꾸고, 학생 개개인의 사고력과 창의성을 존중하는 새로운 평가 체제를 마련하기 위해 도입했다. 공립 일반고 전 학급에 IB를 도입한 사례는 전국에서 표선고가 최초다.
토론·탐구 중심의 수업을 받은 표선고 학생들이 주요 대학에 합격하면서 입소문이 퍼졌고, 외지 학생들의 지원이 몰렸다. 올해 신입생 모집에서는 125명 정원에 170여명이 지원하면서, 제주시 평준화 인문고보다 합격선이 더 높아졌다. 내년에는 정원을 150명으로 늘릴 계획이다.
IB교육 도입 이후 표선면 인구는 3년간 약 360명 증가했다. 최근에는 창의성과 문제해결능력을 키우는 교육과정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제주시 내 IB초등학교에서 교육을 받기 위해 제주로 이주하는 가족도 늘고 있다.
농어촌 유학, 가족과 함께 제주로
교육을 위해 제주로 들어오는 가족 중에는 농어촌으로 유학을 선택한 경우도 있다. 자연과 공동체 문화가 살아 있는 작은 학교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게 하려는 것이다.
제주 송당초 2학년 강이을(8) 가족은 지난 9월 제주로 왔다. 가족형 농어촌 유학 프로그램을 통해 제주의 중산간 마을에서 생활하며 만족감을 느끼고 있다.
이을 양의 어머니는 “학교 선생님이나 이웃 주민과 깊숙하고 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좋다”며 “지금을 함께 즐기고, 진로는 아이와 함께 천천히 고민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올해 처음 시행한 ‘가족체류형 농어촌 유학’에는92가구(학생 136명)가 신청해 최종 31가구(학생 46명)가 소규모 학교에 배정됐다. 학생 수에 따라 제주도교육청이 월 30~50만원을 지원하고, 서울시교육청이 같은 금액을 지원하고 있다.
내년에는 참여 학교를 14개 학교로 확대하고, 기간도 1년 단위로 진행한다. 내년부터 ‘고향품 유학’도 새로 도입된다. 조부모의 본가가 제주인 학생들이 조부모와 같은 집에 살면서 같은 읍면지역 내 소규모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지원한다.
교육을 이유로 제주로 오는 사람들
제주로 육지 사람들이 몰린 건 올레가 전국적으로 붐을 일으키면서 제주살이 열풍이 시작된 2007년부터다. 2011년 서귀포시 대정읍 영어교육도시에 국제학교가 잇달아 개교하며 5000명에 가까운 학생과 가족이 제주로 들어왔다.
최근에는 이을이네와 같은 농어촌 유학이나 IB 교육을 위해 제주로 이주하는 가족이 늘고 있고, 제주만의 특색있는 자율학교 교육과정이 이러한 학부모들의 선택의 폭을 뒷받침하고 있다. 제주 생활의 만족도도 생각보다 높아, 송당초를 비롯해 올해 2학기 제주로 농어촌 유학을 온 많은 가족이 연장 거주를 신청한 것으로 전해진다.
제주도교육청 관계자는 “바다와 산이 가깝고, 마을 공동체 문화가 살아 있는 제주에서 초등학교 시절을 보내고 싶어하는 가족 수요가 생각보다 많다”며 “장기 정주 목적의 문의가 늘고 있어 지자체에 주택 지원 등 더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기사는 제주특별자치도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제주=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