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보고 심폐소생술까지… 골목 도서관의 무한 변신

입력 2025-11-24 15:22 수정 2025-11-24 16:10
초대교회 교인과 지역 주민들이 23일 서울 강동구 초대구름작은도서관에서 심폐소생술 실습을 하고 있다. 초대구름작은도서관 제공

서울 강동구 초대교회(구재원 목사) 2층 작은도서관에서 23일 주일 예배 후 심폐소생술 교육이 열렸다. 책장 사이로 매트가 깔리고 현직 보건교사인 교인이 강사로 나섰다. 교인뿐 아니라 인근 주민도 교육에 참여했다. 조용히 책만 읽는 공간을 넘어, 일상적인 교육과 돌봄 프로그램이 자연스럽게 열리는 모습은 초대구름작은도서관의 정체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2014년 문을 연 초대구름작은도서관은 5000권이 넘는 장서를 갖춘 강동구 등록 사립 작은도서관이다. ‘책을 만나고 사람을 만나는 우리 동네 사랑방’을 표방하며 통기타 입문반, 영어회화 교실, 손글씨, 독서·탁구 동아리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주일 예배가 있는 일요일에도 도서관은 멈춤 없이 운영된다. 대신 월요일이 휴관일이다. 주일에는 예배와 교회학교 프로그램을 도서관 강좌와 통합해 운영한다.

구재원 목사는 24일 초대구름작은도서관에서 ‘교회와 도서관 세미나 2.0’을 열고 작은도서관이 오늘의 목회 환경에서 어떤 대안이 될 수 있는지 설명했다. 그는 작은도서관을 ‘교회와 동네를 잇는 마을 플랫폼’으로 규정한다.

“교회 이름으로 행사를 열면 주민이 머뭇거리지만, 같은 공간에서 도서관 이름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하면 거리감이 훨씬 줄어듭니다. 책을 매개로 세대와 계층이 자연스럽게 섞이고, 그 안에서 교육·돌봄·관계·문화가 한 번에 일어납니다.”

구 목사는 도서관은 성도와 이웃의 재능이 열리는 공간이라고 소개하면서 이런 특징이 주일학교가 침체되는 상황에서 다음세대를 일으킬 도구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전도지를 나눠도 잘 받지 않는 시대입니다. 교문 앞에서 간식을 나눠주면 부모가 오히려 불편해합니다. 그런데 도서관 프로그램은 다릅니다. 아이들은 배우러 오고, 부모들은 안심하고 맡깁니다. 이 흐름을 붙잡아야 합니다.”

구재원 초대교회 목사가 24일 서울 강동구 초대구름작은도서관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도서관 운영의 장점을 소개하고 있다.

초대구름작은도서관의 강좌 상당수는 교인들의 재능에서 출발한다. 한국사 1급 자격증 청년이 역사 강좌를 맡고, 교회 드럼 연주자가 드럼 교육을 진행하는 식이다. 구 목사는 “교회 안에는 특기와 자격이 분명한 분들이 많다”며 “이분들을 강사로 세우면 달란트도 활용할 수 있고 교인도 존중받는 사역을 경험한다”고 말했다.

도서관 등록과 지자체 보조금 활용도 중요한 요소다. 도서관 사업으로 공적 예산을 지원받으면 강사비를 교회 재정이 아닌 지자체 예산으로 지급할 수 있어 작은 교회도 운영 부담이 적다. 기본적으로 강좌는 무료지만, 구 목사는 “교회 형편에 따라 재료비 정도는 받을 수 있다”며 “평생교육센터보다 제약이 적기 때문에 제도만 잘 이해하면 누구든 시작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초대구름작은도서관은 기후위기 시대 환경 교육의 거점 역할도 맡고 있다. 강동작은도서관협의회와 함께 페트병 재활용 캠페인과 분리배출 교육을 운영하고 강동구 기후환경축제에서는 자원순환 홍보 부스로 주민을 만났다.

“작은도서관의 주 이용자는 대부분 아이들이고, 이들에게 기후 감수성을 심어주는 일은 교회의 중요한 공적 책무입니다.” 구 목사의 말이다.

지역사회 활동은 도서관의 존재감을 더 넓힌다. 초대구름작은도서관은 우크라이나·튀르키예 지진 피해 모금, 희망나눔 콘서트, 시(詩) 읽기 모임, 마을 밴드, 탁구 동아리 등 다양한 활동으로 지역 네트워크를 확장해 왔다. 구 목사는 “도서관 관장이나 강사로 지역에 나서면 시민단체와 동 주민센터 등과 자연스럽게 관계가 열린다”고 했다. 예배당과 시장을 잇는 ‘사랑방’이라는 표현이 붙는 이유다.

작은도서관의 가장 큰 힘은 열린 공간으로서의 신뢰다. 구 목사는 “전도 방식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며 “양질의 프로그램과 열린 공간으로 교회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길을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작은도서관은 규모가 크지 않아도 시작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목회 모델이라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10평 남짓한 공간이어도 됩니다. 중요한 것은 공간의 크기가 아니라, 이 공간이 지역을 향해 열려 있다는 사실입니다.”

글·사진=손동준 기자 sd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