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방(안방)가사…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내 후보로 선정

입력 2025-11-24 14:26
상벽가(쌍벽가, 1794년), 풍산 류씨 하회마을 화경당(북촌) 기탁 자료. 한국국학진흥원 제공


한국국학진흥원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국내 후보로 ‘내방가사’가 최종 선정됐다고 24일 밝혔다. ‘내방가사’는 2022년 11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아시아·태평양 지역목록에 이미 등재된 바 있다.

이번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제목록 신청은 국립한글박물관과 한국국학진흥원이 공동으로 추진하고 국내 주요 기록유산 소장기관들이 참여하는 협력 체계로 진행됐다.

신청 대상인 ‘내방가사’ 기록물은 총 567점으로 이 가운데 한국국학진흥원이 85곳의 소유자로부터 기탁받아 관리 중인 292점과 국립한글박물관이 소장한 226점을 중심으로 구성됐다.

이외에도 국립중앙도서관, 경북대 도서관, 단국대 율곡기념도서관, 한국가사문학관, 예천박물관, 상주박물관, 김해한글박물관 등 7개 기관이 참여해 총 49점의 기록물을 함께 제출했다.

‘내방가사’는 남성중심주의가 가장 강했던 조선 후기, 여성들이 자신만의 생활공간인 ‘내방(안방)’에서 한글로 창작한 전통 가사 문학이다. 여성의 삶과 감정을 주체적으로 표현한 내방가사는 자발성과 집단 창작의 문화를 보여주는 독창적인 기록유산으로서 높은 가치를 지닌다.

또 ‘내방가사’는 한문 중심의 남성 기록문화와는 달리 여성의 언어로 구성된 문학이자 시대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역사적 시각을 담은 기록물이다. 여성들은 글을 통해 개인의 일상을 넘어서 사회 전반에 대한 인식을 드러냈으며 이러한 흐름은 20세기 초에 이르러 더욱 뚜렷해진다.

제국주의 침탈, 국권 상실, 해방과 전쟁 등 한국 사회가 격변하던 시기, 여성들은 내방가사를 통해 변화하는 현실을 인식하고 자신들의 경험과 문제의식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했다. 실제로 전체 내방가사의 약 80%가 이 시기에 창작되었다는 점은 이러한 흐름을 뒷받침한다.

‘내방가사’는 여성과 사회를 연결해주는 소통의 매개체이자 여성 문학 공동체 활동을 보여주는 기록물이다. 유교 교육을 통해 한글을 익힌 여성들은 이를 바탕으로 내방가사를 창작하며 자신의 생각을 표현했다.

편지 외에는 외부와 연결될 통로가 없던 당시, 내방가사는 종이 한 장으로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귀한 수단이었다. 여성들은 다른 이의 삶을 글로 공감하고 모임을 통해 함께 낭송·필사·개작하며 문학을 나눴다.

이는 문학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게도 참여 기회를 줬고 전통적인 향유 방식의 전승과 확산을 이끌었다.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이 전통은 여성들이 문화를 단지 소비한 존재가 아니라 능동적으로 지켜온 주체였음을 보여준다.

이번 등재 추진은 민간기록유산의 수집·보존·연구에 오랜 기간 전문성을 축적해온 한국국학진흥원의 공공적 역할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는 계기가 됐다.

‘내방가사’가 18세기 후반 영남 북부지역을 중심으로 성장했다는 점에서 해당 지역에 위치한 한국국학진흥원이 수집·보존해 온 300여점의 내방가사 자료는 오늘날 더욱 깊은 상징성과 사회적 의미를 지닌다.

한국국학진흥원 관계자는 “내방가사는 단순한 사적 기록을 넘어 사회와 공동체의 문화를 연결해온 귀중한 유산”이라며 “이번 등재 추진은 기록유산의 미래적 가치와 사회적 활용 가능성을 세계에 알릴 수 있게 된 점이 매우 뜻깊은 과정”이라고 밝혔다.

안동=김재산 기자 jskimkb@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