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잠바 하나라곤 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 피땀 흘려가며 기도해준 이들의 마음이 모인 것으로 생각해요. 과거의 저처럼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을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면 뭐라도 하고 싶어요.”
포장 비닐을 뜯지 않은 검정 패딩 잠바를 손에 든 신성호(가명·65)씨가 의지에 찬 눈빛으로 이렇게 말했다.
신씨를 만난 건 22일 서울 영등포역 뒤편 영등포공원. 본격적으로 겨울에 접어드는 길목에서 광야교회와 사단법인 사막에길을내는사람들(사길사)이 진행한 ‘광야인의 날’ 행사장에서였다. 행사는 겨울나기가 힘든 소외 이웃에게 월동잠바를 건네주며 ‘예수사랑’을 전해온 광야교회의 대표적인 구제·선교 사역이다. 매년 이맘때쯤 열려 올해로 26회를 맞았다.
광야교회 측은 이날 영등포역 주변에 거주하는 쪽방 주민·홀몸노인·노숙인 1500여명을 초청했다. 광야교회 담임이자 사길사 이사장인 임명희 목사를 비롯해 홍동필(전주새중앙교회) 김영한(샬롬나비 대표) 임형택(숭신교회) 허정섭(신사동교회) 목사와 배우 장광 장로 등은 직접 잠바를 입혀주며 이들을 위로했다. 채현일 국회의원과 최호권 영등포구청장도 현장에 나와 격려의 말을 전하며 임시·임대주택 사업 등 복지 제도 확충을 약속했다.
광야교회는 잠바 나눔에 앞서 합창·악기 연주 등 위로 공연도 준비했다. 신씨도 간증자로서 직접 무대에 올라 오랜 상처와 아픔을 신앙으로 딛고 재기한 자신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털어놨다. 술에 취해 자녀 앞에서 흉기를 들었던 아찔했던 순간부터 가출한 뒤 도박에 빠져 전 재산을 잃고 세상을 등지려 했던 순간까지, 진솔한 그의 고백에 공원에 모인 이들도 귀를 기울였다.
신씨는 “4년 전 광야교회를 통해 복음을 접하고 하나님께 매달렸더니 쓰레기 같았던 제게도 힘을 주셨고, 지금 이 자리에까지 설 수 있게 해주셨다”며 “현재 광야교회가 마련한 쉼터에 머물며 동네 청소부터 잡일까지 적극적으로 나서며 자활에 힘쓰고 있다”고 했다. 이어 “알코올 중독에서도 벗어나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고 편안하다”며 “여러분도 그럴 수 있다”고 호소력 있는 목소리로 격려했다.
특히 이날 행사장에서는 용돈을 모아 후원한 초등학생부터 쪽방촌에 거주하지만, 자신보다 더 어려운 형편의 이들을 위해 마음을 보탠 이들의 사연도 들을 수 있었다. 윤준서(13·삼일교회)군은 그동안 용돈을 모아 마련한 후원금을 들고 행사장에 나왔다. 윤군은 “초등학교 1학년 때 학교 선생님을 따라 이 행사에 처음 왔는데 돕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평소 부모님께서도 늘 어려운 이웃과 나누며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셨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더 많은 분이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 사랑을 느껴 희망을 얻으셨으면 한다”며 수줍게 웃었다.
옆에 있던 윤군의 부모 윤영석(52) 백성희(47)씨는 “당시 기독교 대안학교를 다니며 이 행사를 알게 된 준서가 처음 돕고 싶다고 했을 때 좋은 교육이 되겠다 싶었다”며 “일회성이 아니라 꾸준히 돕고 싶다는 준서의 말에 우리도 덩달아 책임감을 느끼고 적극적으로 독려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임 목사는 “행사를 앞두고 재원 마련에 고민이 컸는데 윤군과 같은 어린아이부터 기초생활보장수급자로 쪽방에 살면서도 소문을 듣고 십시일반 후원에 나서준 이들까지, 정말 많은 이들이 후원에 나서줬다”며 “성경 속 ‘오병이어 사건’과 같은 감동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성경은 초막절에 고아와 나그네, 과부 등 소외된 이들을 불러 하나님의 복을 나누라고 말씀하셨다”며 “히브리어로 초막절을 ‘수코트’라 부르는데, 오늘날 나그네와 과부 같은 쪽방촌 주민이나 노숙인들에게 ‘예수코트’(예수의 잠바)와 함께 위로와 용기를 건네며 지속해서 하나님 복을 나눠주려 한다”고 말했다.
글·사진 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