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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암이는 구조된 뒤 갈 데가 없던 유기견이었어요. 좋은 입양자를 찾아주고 싶어 시작한 임시보호가 어느새 6년이 됐습니다. 솔직히 버겁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갈 데 없는 후암이를 지켜줘서 고맙다’며 6년간 꾸준히 후원해 준 익명의 시민들 그리고 ‘기왕 책임진 생명을 끝까지 책임지자’는 우리 부부의 뜻이 통해 긴 임시보호를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서울 노원구의 유기견 후암이 보호자 정순재(34)씨
버려진 유기동물을 구조하는 일은 어렵습니다. 하지만 구조보다 더 어려운 건 구조된 동물을 돌보는 일이죠. 잠깐 돕는 것과 함께 살며 돌보는 건 완전히 다른 일이니까요. 그래서 입양은 물론이고 임시보호처를 찾는 것조차 지난한 과정입니다.
6년 전 유튜브 개st하우스에 출연한 유기견 후암이도 그랬습니다(‘털 깎고 버려진 코카…유기범은 왜 미용을?’ 2020년 11월 21일자 보도). 후암이는 서울 노원구의 한 음식점에 흘러들어온 8㎏ 남짓한 작은 코카스패니얼이었습니다. 나이는 8살 정도로 제법 많았지만 예쁘게 미용한 품종견이 버려졌을 거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웠죠. 하지만 후암이 몸에 심어진 인식칩을 조회한 결과는 씁쓸했습니다. 견주는 강아지를 강박적으로 수집하는 이른바 애니멀호더인데다 이미 여러 차례 동물 유기로 과태료 처분을 받은 상습 유기범이었습니다.
만약 후암이를 견주 집에 돌려보낸다면 다시 유기되거나 열악한 환경 속에서 고통스러운 견생을 이어갈 게 분명했습니다. 다행히 제보자는 설득 끝에 호더로부터 후암이의 소유권을 포기하겠다는 각서를 받아내는 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당장 갈 곳이 없었어요. 후암이는 일단 제보자가 운영하는 음식점 한 켠에 지낼 곳을 마련해야 했습니다.
이런 사연이 개st하우스 보도를 통해 알려진 뒤 후암이에게 임시보호자가 찾아왔습니다. 후암이와 같은 코카스패니얼 견종을 기르고 있던 예비 신혼부부 김율(34), 정순재(34)씨. 다행히 후암이는 부부의 신혼집에 도착하자마자 빠르게 임시보호 생활에 적응했습니다. 부부의 정성 덕에 몰라보게 건강해진 모습으로 입양자를 기다리는 후암이 사연 영상은 유튜브 채널 누적 조회수 140만건을 기록할 만큼 많은 응원을 받았습니다. 지금도 댓글창에는 ‘후암이의 근황이 궁금하다’ ‘구조 이후 소식을 알려달라’며 문의가 이어질 정도인데요. 극적인 구조와 임시보호 이후 후암이는 과연 어떻게 됐을까요? 과연 기다리던 평생 가족을 만났을까요?
개st하우스는 지난 9월 7일, 후암이가 지내고 있는 서울 노원구의 한 아파트를 방문했습니다.
“신혼집서 시작한 임보…잊지 않고 응원해주셔서 고마워”
“띵동!” 초인종을 누르자 아파트 문이 열리고, 6년 전 후암이를 임시보호했던 김율씨가 취재진을 반갑게 맞이합니다. 그런데 쪼르르 달려와 손님을 반겨야 할 후암이가 보이지 않네요. 살펴보니 후암이는 거실 한쪽에 놓인 푹신한 방석에 누워 눈만 끔뻑끔뻑합니다. 노견이 된 후암이가 반가움을 표시하는 방법이라고 해요.
구조 당시 8살 정도로 추정됐던 후암이는 이제 14살의 노령견이 됐습니다. 반려견 1500만 마리의 수명을 연구한 미국의 한 연구에 따르면 후암이 같은 5~10㎏대 중형견의 평균 수명은 13.5세입니다. 후암이는 사람으로 치면 100살에 가까운 셈이죠. 순재씨는 후암이를 품에 안으며 “산책을 하도 좋아해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에 대여섯번씩 산책하던 녀석이 이젠 기력이 없어 제 품에 안긴 채 동네 한 바퀴를 도는 게 고작”이라고 말합니다.
처음에는 후암이의 임시보호가 이렇게 길어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순하고 귀엽게 생긴데다 부부가 홍보에도 애를 써서 입양 신청이 제법 들어왔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결과는 실망스러웠습니다. 율씨는 “가정 방문해 입양을 확정하겠다는 상담도 2건 있었다”며 “하지만 당시에도 고령견에 속하는 후암이의 돌봄이 버거웠는지 결국 다들 입양을 포기하더라”고 전했습니다.
그렇게 부부의 제주도 신혼여행부터 함께했던 후암이와의 인연은 6년이 됐습니다. 낯선 유기견을 6년이나 돌본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죠. 순재씨는 “그만하면 충분히 돌봤으니 그만 시설로 보내라는 지인들의 충고도 여러 번 들었다”면서 “하지만 구조 당시부터 잊지 않고 후암이를 십시일반 후원해준 10여명의 시민들 마음을 생각하면 포기할 수 없었다. 그분들 덕에 지금까지 임시보호를 이어갈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 사이 기업 후원도 있었습니다. 후암이가 노령견이 되면서 배변 실수가 잦아지고 청소가 힘들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가전제품 업체 로보락에서 이들 부부에게 로봇청소기와 습건식 청소기를 후원한 겁니다. 휴대전화에 연동된 앱 버튼을 누르면 바닥 청소와 세척 및 건조까지 알아서 수행하는데다 소음도 거의 없어 노령견 후암이도 편안해했다고 합니다.
“함께한 6년…너도 행복했길”
개의 시간은 사람보다 8배는 빠르게 흐른다고들 합니다. 구조 이후 지난 6년은 사람으로 치면 반평생에 해당하는 시간이죠. 어느덧 후암이의 견생도 마침표를 찍을 시간입니다. 순재씨가 밥그릇에 ‘달그락’ 사료를 쏟자 예전같으면 힘차게 달려왔을 후암이가 비틀비틀 힘겹게 걸음을 뗍니다. 율씨가 그 모습을 보며 눈물을 글썽입니다. 그는 “동물병원에 가니 이제 살날이 얼마 안 남았다고 한다”며 “바람이 있다면 후암이가 그저 편안히 고통 없이 떠났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다가올 이별을 직감한 부부는 후암이를 떠나보낼 준비를 마친 듯했습니다. 순재씨는 힘없이 방석에 웅크린 후암이를 쓰다듬으며 “태풍이 몰아쳐도 산책하자고 고집부리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젠 헤어질 시간이 왔다”면서 “우리 품에 와서 그래도 즐거웠기를, 또 재미있었기를 바란다”고 속삭였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2주일 뒤 임보자 부부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습니다. 후암이의 죽음을 전하는 전화였습니다. 후암이는 부부의 품에 안겨 편안히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율씨는 “후암이를 잊지 않고 꾸준히 후원한 분들 덕분에 후암이를 마지막까지 잘 보낼 수 있었다”면서 “심지어 장례식을 치러주라고 부조금을 보낸 분들도 있었다. 너무 감사한다”고 전했습니다.
모든 일이 끝나고 후암이의 후원 계좌에는 30만원이 남았습니다. 지난 6년간 매달 후원금 내역과 후암이에게 쓴 개인 지출까지 전부 공개해온 부부는 남은 돈을 도움이 필요한 유기동물에게 기부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율씨는 “도움이 절실한 동물에게 후암이 이름으로 치료비를 보태고 싶다”며 “개st하우스 취재 과정에서 그런 사연을 가진 유기동물을 만나게 되면 꼭 연락해달라”고 말했습니다.
이성훈 기자 tell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