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과가 훈장인 이들이 있다. 군사독재 시절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열사들의 전과가 그렇다. 불법적인 비상계엄이나 권위주의 폭거에 맞선 기록은 분명 시대적 고통의 기록이자, 명예로운 저항의 상징이다. ‘정의론’으로 유명한 하버드대 정치철학과 교수 존 롤스(John Rawls)는 부정의한 체제에 대항하는 것은 공공적이고 윤리적인 행동으로 평가받아 마땅하다고 했다.
하지만 개인의 영달을 위한 위법 행위나, 공직을 수행하면서 발생한 윤리적 흠결은 어떠한 명분과 핑계가 있다 하더라도 결코 훈장이 될 수 없다. 특히 선출직 공직자는 단순히 행정 전문가를 넘어, 지역 사회의 법과 윤리를 상징하는 얼굴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이들은 시민의 삶과 직결된 중요한 예산과 정책을 결정한다. 그들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는 공동체의 도덕적 기준이 된다.
지방선거가 6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4년 간 지방 행정을 책임질 공직자에게 어떤 수준의 도덕성을 요구해야 할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할 때다. 공직자에게 주어질 막중한 책임을 생각하면 윤리 기준은 타협의 대상일 수 없다. 그런 면에서, 공직을 희망하는 이의 과거 행적, 특히 법을 위반하여 사법기관의 처벌을 받은 전과는 유권자들에 중요한 선거 요인이다.
선출직 공직자의 윤리 문제는 단순 흥밋거리나 개인의 과거사가 아니다. 공직 수행 능력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자, 주민의 신뢰를 결정하는 핵심 요인이다. 특히 공직을 희망하는 사람이 어긴 법이나 도덕적 흠결의 내용이 사사로운 이득 때문이라면 유권자는 후보자의 자격 자체를 원천적으로 의심하게 된다. 행정학에서 강조되는 공직 윤리(Public Service Ethics)의 관점에서, 공직자의 비윤리적 행위는 공공의 신뢰(Public Trust)를 붕괴시켜 투명한 행정의 기반 자체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선출직 공직자는 세금을 관리하고, 각종 규제와 법규를 집행하는 최고 책임자다. 법을 어긴 전력이 있거나 윤리적 논란을 야기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 어떻게 리더십의 명분을 가질 것이며, 누가 이를 따를 것인가? 무엇보다도 투명하고 공정한 행정이 가능하긴 할 것인가? 현대 민주주의에서 공직자의 리더십은 법과 규범에 기반한 합법적 권위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법을 위반한 전력은 리더십의 근본적인 정당성(Legitimacy)을 훼손하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한다.
지방선거는 주민의 일상생활과 가장 밀접하게 연결된 공직자를 뽑는 선거다. 그렇기에 지방선거의 후보자는 그 누구보다도 높은 도덕성과 책임감을 요구 받는다. 우리는 이제 후보자를 평가할 때, '전과'라는 과거의 잣대뿐만 아니라 '공직 수행의 청렴도'라는 현재의 잣대까지 동시에 적용해야 한다.
유권자는 투표를 할 권리와 더불어 투표를 잘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오직 청렴함과 능력만을 기준으로 미래로 나아갈 지도자를 선택할 책임이 있다. 우리는 후보자의 사과와 해명 이전에, 그들의 전과 기록과 공직 수행 중 드러난 행정 윤리 수준이 지역의 미래에 어떻게 이득이 될 것인지 냉철하게 판단해야 할 것이다.
한기영 서경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