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LG 트윈스는 최근 7년 연속 가을야구 진출과 두 번의 통합우승을 일궈내며 강팀 이미지를 굳건히 했다. 2018년 10월 차명석 단장 취임 이후 나온 결과물이다. 차 단장은 국민일보 인터뷰에서 “우승은 이미 지나간 일”이라며 “왕조보다는 명문 LG를 만드는 게 저의 꿈”이라고 말했다.
그는 늘 현장 지도자와 선수, 구단 프런트, 팬들에게 공을 돌린다. 그러나 구단 살림 전반을 책임지는 차 단장의 역할도 컸다는 게 야구계의 평가다. 그가 체계적인 선수 육성 시스템을 확립하고, 소통 능력을 바탕으로 팀을 하나로 묶은 덕분에 LG가 도약했다는 것이다.
종목을 불문하고 소위 MZ 세대라 불리는 어린 선수들과의 소통 문제가 중요해진 시대가 됐다. 차 단장은 “제가 져주면 된다”는 명쾌한 답변을 내놨다. 에이전트 제도가 선수 몸값을 부풀린다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선 “결정권은 결국 구단에 있다”는 소신을 밝혔다.
차 단장은 중간 투수로 다소 짧은 10년간의 현역생활을 마치고 유니폼을 벗었다. 코치 시절엔 LG가 하위권을 맴돌던 암흑기를 보냈고, 방송 해설위원 활동을 거쳐 단장에 올랐다. 그는 “지난날의 과오나 개선점을 적어뒀던 ‘일기장’이 우승 2회 단장 차명석을 만든 원동력이 됐다”고 말했다. 지난 18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차 단장을 만났다.
-단장 취임 후 두 번째 우승에 대한 소회를 밝혀 달라.
“사실 올해 우승을 예상치 못했다. 내년에 전력이 더 좋아질 거라는 생각에 일단 포스트시즌을 잘 치르고 우승 전략을 만들자는 자세로 시즌에 임했다. 초반 연승을 달리면서 우승의 기운이 많이 모였다. 상대가 플레이오프 5차전까지 치르면서 많은 운이 따랐다. 플레이오프가 빨리 끝났으면 한국시리즈 우승이 더욱 어려웠을 거다. 여러모로 더욱 겸손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LG가 결국 힘을 갖췄기 때문에 우승한 것이 아닌가.
“7년 연속 포스트시즌을 경험했다. 우리가 다른 팀들보다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고, 큰 경기를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던 건 강점이라 생각한다. 신인부터 베테랑까지 선수는 물론 코칭스태프, 구단 직원들까지 가을야구에 맞춰 알아서 잘 움직였다. 그런 경험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요소라는 걸 새삼 느꼈다.”
-직접 엔트리에 선수 1명을 추천하는 이유와 기준은 뭔가.
“프로팀이 성적을 무시하고 선수 육성만 하거나, 육성은 게을리하고 성적만 추구할 수도 없다. 어떻게 하면 체계적으로 맞물려 성장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엔트리 28명 중 27명은 감독이 정하고, 나머지 1명은 단장이 추천하는 시스템을 정착시켰다. 2군 유망주의 1군 경험 기회를 고려했다. 그렇게 홍창기가 탄생했다. 추천 기준은 명확하다. 매월 1회 2군 육성 공유회를 한다. 2군 코칭스태프가 훈련·지도 결과를 상세히 발표한다. 장·단기 육성 선수를 구분해 코치진의 의견을 수용한다. 현재 실력과 발전 가능성, 태도 등 정량·정성 평가를 거쳐 결정한다.”
-어느 종목이든 젊은 선수들과 소통하는 게 고민인데, 철학이 있나.
“제가 져주면 된다. 때때로 젊은 선수들이 농담 따먹기를 하듯 접근해도 져주면 된다. 문제가 되는 것은 선수가 나를 안 찾아오는 상황을 만드는 거다. 언제든지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확고하다. 누군가가 먼저 찾아오지 않는 건 내가 행동을 잘못해서다. MZ세대가 잘 다가올 수 있는 인기 있는 단장이 돼야 한다. 다만 베테랑에게는 존경받을 수 있는 행동을 하려고 노력하고 고민한다. 대상에 따라 소통 방식을 달리 한다고 볼 수 있다.”
-SNS 활성화에 따른 어린 선수들의 멘털 관리에 신경을 쓰는 게 있나.
“악플이나 악성 메시지를 보고 힘들어 할 것 같으면 SNS를 하지 말라고 선수들에게 조언하곤 한다. 그걸 견딜 수 있는 내공이 되면 하고, 안 되면 닫아 놓으라고 한다. 나는 악플을 전혀 신경 쓰지 않으니 모든 걸 열어둔다. 팬과 소통도 적극적으로 한다. 다만 어린 선수들은 대처 능력이 떨어진다. 프로야구 선수를 직업으로 선택했으니 그 정도 스트레스를 견딜 줄도 알아야 한다고 얘기를 많이 한다.”
-구단 운영하는 단장 입장에서 에이전트 제도는 어떻게 바라보나.
“에이전트 제도는 선수 권익 보호를 위해 있어야 한다. 결국 선수 몸값을 올리는 건 구단이다. 그만큼 돈을 지불하니까 생기는 일이다. 제도 탓을 하지 말고, 각 구단이 잘 판단을 해야 한다. 몸값을 낮추려면 2군 육성을 잘해야 한다. 그게 안 되니 오버페이를 해서라도 자유계약선수(FA)를 영입해 해결하려는 게 아닌가. 구단 자체적으로 자생력을 키워야 한다. 에이전트 제도 때문에 팀이 망할 수 있다는 걱정은 동의하기 어렵다. 결정권은 결국 구단에 있다.”
-우승 2회 단장이 된 원동력은 뭔가.
“선수 생활을 10년만 하고 그만뒀다. 어디 갈 데가 없어 해설위원 활동을 하다가 코치를 했는데, 당시 LG가 암흑기였다. 매번 포스트시즌에 못 가고, 떠나보내야 하는 동료들이 많았다. 당시 밑바닥에서 모든 일을 기록했다. 20년 동안 일기를 썼다. 하면 안 되는 일, 개선해야 할 일 들을 많이 적어뒀다. 그때의 기록이 단장 생활의 밑거름이 됐다. 단장 취임 후 일기를 많이 살펴보고 참고했다. 지금도 독서를 즐긴다. 단장 차명석은 ‘읽기’와 ‘쓰기’로 만들어졌다. 그게 없었으면 구단 매뉴얼과 육성 시스템도 없었을 거다. 개인적으로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라는 말을 싫어한다. 결과가 좋아야 과정도 좋게 평가되는 걸 몸소 경험했다. 결과를 먼저 만들고 잘못된 과정이 있으면 수정을 하자는 역발상을 했다. 매뉴얼은 구단이 만들 테니까 현장은 성적을 만들라고 강조했다.”
-우승팀도 금방 추락할 수 있는 냉철한 프로의 세계인데, 앞으로 목표는 뭔가.
“감독과 선수들은 ‘왕조 구축’ 얘기를 하던데, 저는 ‘명문 구단’을 만드는 게 꿈이다. LG가 언제나 정상에 도전할 수 있는 연속성을 지닌 강팀이 되는 게 목표다. 성적도 중요하지만 외적인 구단 문화까지 뒷받침이 돼야 한다. 2023년 우승하고 지난해 정규리그 3위를 했는데, 사실 제 눈에는 느슨함이 보였다. 비시즌에 그런 부분을 경계해야 한다. 그래도 하위권으로 처지지 않고 선방을 했기에 올해 우승을 했다고 본다. 우승은 이미 지나간 일이 됐다. 내년에도 성적을 내려면 구단과 코칭스태프가 그런 느슨함을 잡아내야 하고, 선수들도 이런 부분을 알아야 한다. 구단 차원에서도 선수단 교육을 통해 이런 것들을 강조하고자 한다.”
박구인 최원준 기자 capta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