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교회가 기도할 때입니다

입력 2025-11-20 17:36

오늘 우리가 사는 세계는 앞날을 예측하기 어려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이 3년이 지났습니다. 이스라엘의 전쟁도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생명이 희생을 당하고 있으며, 경제적 손실 또한 천문학적입니다.

우리나라는 어떻습니까. 정치적 안정이 없어 주민들은 불안과 공포 속에 있고, 서민들은 갈 바를 몰라 당황하고 있습니다. 자영업자들이 문을 닫는 숫자도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럴 때 바라보고 기대할 수 있는 곳이 교회인데 불행하게도 교회가 교회의 사명을 다하지 못해서 국민을 더욱 실망하게 하고 있습니다. 부끄럽지만 예수님의 말씀처럼 맛을 잃은 소금이 돼버리고 말았습니다. 소금이 제맛을 낼 때 음식이 맛나고, 부패를 막아낼 수 있는데 소금이 그 맛을 잃고 나니 길가에 내버려 져 짓밟히는 존재로 전락해버리고 말았습니다. 불행한 일이요 민족의 비극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미래는 절망입니까. 교회는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시대적인 사명을 망각하고 세속화한다면, 물속으로 가라앉는 배처럼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의 교회를 아주 버리시지는 않으십니다. 교회가 정신을 차리고 깨어 일어나면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기도하는 것은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요 명령입니다. 왜요? 기도하지 않으면 시험에 들기 때문입니다.

병에는 장사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시험에도 장사가 없습니다. 왜 시험에 듭니까. 세상의 잠에 졸다가 시험에 듭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있어 기도하라”고 하시면서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다”고 하셨습니다.

베드로 같은 의리의 사람도 시험에 들었습니다. 예수님이 재판을 받으실 때 주위 환경이 무서웠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기는 절대로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던 베드로가 어린 여자 앞에서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이것이 인간이요, 바로 우리입니다. 오늘의 교회가 이런 형편이 아닙니까. 우리 사회가 이렇게 혼란하고 캄캄한데 사회의 양심인 교회가 아무 소리도 못 내고 있으니 자는 겁니까, 시험에 들어서입니까.

시험에 들어 예수님을 부인한 베드로는 두고두고 부끄럽고 미안하고 죄송해서 믿음의 후배인 우리에게 말합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 오늘 이때야말로 이기적인 기도나 드릴 때가 아니고 그동안 우리 사명을 다하지 못한 것을 뉘우치며 회개하고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해 기도할 때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이 진정으로 뉘우치고 자백하는 기도를 드릴 때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다시 기회를 주십니다.

왜 기도 해야 합니까.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을 얻는 비결이기 때문입니다. 귀신들린 아이를 고치겠다던 제자들이 실패하고 망신했을 때 예수님은 말씀 한마디로 고치셨습니다. 제자들은, 우리는 왜 못했습니까. 주님 능력의 비결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기도 외에는 이런 능력이 나갈 수 없다.” 그렇습니다. 능력의 비결은 기도입니다. 믿음의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있습니다.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기도하는 집을 이웃을 추구하는 장사 터로 만들지 맙시다. 이것을 벗어나지 않으면 하나님이 계시지 않으시고 떠나십니다. 하나님이 떠나시면 그것이 교회가 아닙니다. 제발 한국교회가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 기도하는 교회가 됐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