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착한 대응, 세월호와 달랐다…선원 21명 끝까지 남고 해경은 신속 구조

입력 2025-11-20 15:58
19일 오후 8시17분쯤 전남 신안군 장산면 장산도 인근 해상에서 퀸제누비아 2호가 좌초됐다. 목포해경 제공

승객과 선원 267명의 목숨을 책임져야 할 1등 항해사가 좁은 수로를 지나는 와중에 휴대폰을 하다가 무인도를 들이받은 퀸제누비아2호의 아찔한 사고는 예견된 안전불감증으로 드러났다.

다행히 공포 속에서도 안전매뉴얼을 따라 질서를 지켰던 승무원과 승객들의 침착한 대응이 혼란을 피하며 대형사고로 이어지지 않았다.

사고 직후 승객들은 불안에 떨면서도 승무원의 안내방송에 따라 모두 구명조끼를 챙겨 입고 해경의 연안 구조정으로 옮겨탈 수 있는 여객선 후미 부분에 질서정연하게 줄을 서서 차분하게 구조를 기다렸다.

특히 임산부와 어린이, 노약자부터 순차적으로 이동한다는 안내에 따라 승객 모두 차분히 따랐다. 이후 어린이와 노약자부터 구조를 시작해 사고 발생 3시간10분 만인 오후 11시27분 모든 승객을 구조하는 데 성공했다.

선원 21명은 사고 이후에도 모두 선내를 지켰다. 사고 당시 이들은 승객들에게 구명조끼 착용을 안내하는 등 승객들을 안심시켰다. 또 승객들이 모두 구조된 뒤 선박이 목포항에 입항할 때까지 배에 남아 선체 상태 등을 점검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 단원고 학생들과 교사의 목숨을 책임져야 할 이준석 선장과 선원들은 배가 침몰하는 와중에도 객실에서 대기하라는 안내방송만 남긴 채 갑판으로 탈출해 해경에 구조됐다. 가장 중요한 사고 직후 안전매뉴얼대로 실행한 퀸제누비아2호의 승무원과 승객의 침착한 대응이 화를 막은 것이다.

19일 밤 전남 신안군 해상에서 좌초한 여객선 퀸제누비아 2호에서 승객들이 구명조끼를 입고 하선 준비를 하고 있다. 목포해양경찰서 제공

인명피해도 경미한 것으로 집계됐다. 부상자는 총 30명으로, 이중 26명은 이상 소견이 없어 이날 곧바로 퇴원했다. 나머지 4명은 뇌진탕 등 소견으로 입원치료를 받고 있으나, 중상자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대형 여객선이 무인도에 좌초됐음에도 큰 인명피해가 발생하지 않으면서 시민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신안군 흑산면 한 주민은 “전날 밤 구조 완료 소식에도 불안함이 가시지 않았다”며 “크게 다친 분이 없다고 하니 그제서야 가슴을 쓸어내렸다”고 말했다.

차량과 화물에 대한 고박(화물 등을 선박에 고정시키는 작업)을 단단히 한 덕분에 선체가 급격히 기울어지지 않아 대형사고로 이어지지 않았다.

선체 1층과 2층에는 화물차와 승용차 등 차량 118대가 적재됐고, 18.8t 분량의 컨테이너도 10개나 실렸다. 하지만 화물적재 한도인 3552t을 넘기지 않으며 안전수칙도 그대로 준수했다.

이로 인해 무인도 충돌에 따른 충격 후에도 차량과 화물 등이 한쪽으로 쏠리지 않아 크게 기울어지지 않으면서 화를 면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에는 차량과 화물을 제대로 고정하지 않아 변침시 한쪽으로 쏠리면서 선체가 빨리 기울어지며 침몰을 가속화 시킨 탓에 인명구조가 늦어지며 사고를 키웠다.

당시 차량 고박에는 ‘안전율 4 이상’의 설비를 사용해야 하며 밧줄(벨트)과 쇠줄(체인) 등으로 모두 네 곳을 채우고 화물은 7~8곳씩 각각 고정해야 하지만 쇠줄 대신 밧줄을 사용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해경의 신속한 출동에 의한 긴급 구조도 인명사고를 막았다. 해경은 이날 오후 8시17분쯤 사고 신고를 접수하고 곧바로 고속 경비정을 급파해 11분 만에 현장에 도착했다. 상황을 확인한 해경은 경비함정 17척과 연안 구조정 4척, 항공기 1대, 서해특수구조대 등 가용 자원을 총동원해 한밤중 구조 작업에 돌입했다.

세월호 참사 시에는 침몰 최초 신고 후 40분이 지나서야 해경 경비정이 현장에 도착해 구조에 나섰지만 이미 선체가 기울어진 탓에 해경 구조대원들이 선박 안으로 진입조차 하지 못해 대형 인명피해가 났다.

신안=김영균 기자, 이은창 기자 ykk22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