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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다임의 전환이라고 할 만큼 자동차의 기술 진보가 빠르게 이뤄지고 있지만 운전자들 사이에서 유독 호불호가 갈리는 기능이 있습니다. 바로 ‘터치식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입니다.
요즘 신차는 대부분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에 커다란 디스플레이가 달려 있습니다. 여기에 내비게이션뿐만 아니라 열선, 히터, 에어컨, 엔터테인먼트, 주행모드 등 대부분의 기능을 담습니다. 과거 물리버튼 시절에 비해 실내 인테리어는 깔끔해졌지만 원하는 기능을 실행하기까지 거쳐야하는 단계가 늘었습니다. 그만큼 시간도 더 오래 걸립니다. 터치식과 물리버튼식 가운데 어느 걸 더 선호하는지는 운전자마다 다르겠지만 문제는 터치식이 안전을 해칠 우려가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유럽 신차 안전성 평가 프로그램인 ‘유로 NCAP’가 움직였습니다. 내년부터 와이퍼·헤드라이트·방향지시등·경적·비상등 등 5가지 기능은 물리버튼을 유지해야 한다는 기준을 도입하기로 한 것이죠. 아직 디스플레이 속으로 들어가지 않은 기능들이라 안전등급이 떨어질 차종은 거의 없겠지만, 더 이상 제조사가 물리버튼을 빼지 않도록 유도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2029년부턴 이 같은 조치를 더 강화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유로 NCAP의 전략 개발 디렉터 매튜 에이버리는 말했습니다. “거의 모든 제조사가 주요 조작 기능을 중앙 터치스크린으로 옮겼고 이는 운전자의 시선을 도로에서 떼도록 만들어 사고 위험을 높입니다. 제조사들도 너무 멀리 갔다는 걸 인식하고 있습니다.”
터치스크린이 확산한 배경엔 제조사의 비용절감 노력이 자리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버튼과 배선보다 소프트웨어가 더 싸고, 특히 대중차의 경우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에도 유리하다는 겁니다. 하지만 업계에선 터치스크린에 대한 경고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스티븐 키핀 영국 노섬브리아대 전 디자인학장은 “전통적인 물리버튼은 보지 않고도 손으로 기능을 조작할 수 있었다. 터치스크린은 이 모든 걸 없앴다”며 “운전에만 집중하도록 진화해 온 방식과 완전히 상반된다”고 지적했습니다. 미국 IT 전문지 와이어드는 최근 “일부 자동차 제조사가 ‘똑똑한 스크린이 사실은 멍청했다’는 점을 서서히 인정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실제로 물리버튼의 부활을 시도하는 완성차업체도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 4월 폭스바겐의 디자인 책임자 안드레아스 민트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자동차는 휴대폰이 아니라면서 물리버튼을 줄이는 시도를 멈추겠다는 취지로 말하기도 했죠.
자동차의 물리버튼은 사라질 위기에 놓였었습니다. 키보드 치는 손맛을 느낄 수 있는 쿼티(QWERTY) 자판을 고집하던 블랙베리가 결국 사라진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자동차는 휴대폰이 아닙니다. 영국 로열칼리지오브아트 지능형 모빌리티 디자인센터장인 데일 해로우는 “터치스크린은 정적인 환경에선 성공했지만 주행 환경에선 적합하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